경기 평택시에 있는 주한미군 기지인 캠프 험프리스 주변 토양·지하수 오염 조사 현장. 평택시 제공
미군기지 주변의 토양 정화작업을 떠맡은 지방자치단체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자체가 자체 예산을 들여 오염토를 정화하고,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내 비용을 돌려받는 ‘선 정화 후 비용 청구’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소송 비용을 지자체가 고스란히 부담해야 할 뿐 아니라, 돌려받는 보상비도 실제 투입액보다 적은 경우가 빈번하다. 지자체의 재정 부담을 덜어줄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8일 평택시와 환경부 등의 설명을 종합하면, 평택시는 지난 8월부터 평택 미군기지 주변의 오염토 정화작업에 돌입했다. 대상지는 팽성 캠프 험프리스 주변, 지휘소연습(CPX) 훈련장, 평택 오산미군기지 주변 등 17곳 2200㎡ 면적이다. 이곳 토양에서 기준치를 초과하는 석유계총탄화수소(TPH)와 아연, 니켈 등 중금속 오염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현재 오염토를 외부로 반출해 정화하고, 기존 땅에는 새로운 흙을 메우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미군기지 주변 지역은 ‘주한미군 공여구역 주변지역 등 지원특별법’에 따라 환경부에서 5년마다 환경기초조사를 하고 있다. 2013년에 이어 2018년 두차례 조사가 진행됐는데, 조사에서 확인된 오염토 정화 책임은 평택시가 지게 된다. 정화 비용은 토양환경보전법과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소파)에 따라 해당 지자체 재정에서 먼저 지출하고, 국가배상 절차에 따라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을 통해 받게 된다.
평택시는 ‘선 정화 후 비용 청구’ 방식이 기초지자체에 재정 부담을 주고, 행정력을 낭비하는 불합리한 절차라고 본다. 시는 2015년 1차 오염토양 정화사업에 투입된 비용 10억7천만원의 반환을 청구했으나 85% 수준인 9억2천만원(지연이자금 포함)만 돌려받았다. 소송 비용도 1300만원이 들었다. 이번 2차 오염 토양 정화사업비는 16억원 규모로, 청구 금액을 모두 돌려받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소송에서 해당 구역 토양오염이 미군기지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지를 입증할 책임도 지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시 관계자는 “5년마다 같은 구역을 조사하고, 오염 토양을 정화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주한미군 관련 사무는 중앙정부 사무인 만큼, 기초조사부터 정화 계획 수립, 실행 및 검증까지 중앙정부에서 하거나 예산을 수립해서 내려보내는 구조가 맞다”고 강조했다.
경기 평택시에 있는 주한미군 기지인 캠프 험프리스 주변 토양·지하수 오염 조사 현장. 평택시 제공
평택뿐만 아니라 전국 모든 미군기지 주변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국회에서 2015년 중앙정부가 예산을 투입해 오염토를 정화하도록 하는 특별법 개정안이 발의됐으나, 국회 회기가 끝나면서 폐기됐다. 평택시는 지난해 11월 ‘평택 주한미군 공여구역 주변지역 등 환경오염 정화를 위한 시민참여위원회’를 구성하고, 이런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다.
임윤경 부위원장(평택평화센터 대표)은 “미군기지 주변 토양오염원은 기지 내부에 있다. 지자체의 권한이나 역할 밖인 영역으로, 중앙정부 차원에서 오염원 제거를 위한 협상이나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며 “오염토 정화 방식에 대한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시민참여위 차원의 결의문을 국방부와 환경부 등에 전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환경부는 소파 탓에 현행 방식을 바꾸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소파 제23조 1항은 국가가 정화할 경우 피해에 대한 청구권을 포기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자체가 오염토 정화를 해야 국가배상법에 따라 법무부 산하 배상심의회를 통해 배상액의 75%는 미군이, 나머지 25%는 국가가 배상하게 되는 구조다. 환경부 관계자는 “현행 방식이 지자체에 부담이 있기는 하지만, 소파 자체를 바꾸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며 “원인자로부터 복구 비용을 받으려면 현재 방식 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이정하 기자
jungha98@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