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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 일치에도…화성연쇄살인 ‘진범’ 지목 어려운 이유는?

등록 2019-09-25 17:18수정 2019-09-25 17:25

교도소 면회가서 조사하지만 이마저 거부하면 끝
공소권 없는 사건에 경찰 강제수사 한계 드러나
최면수사나 거짓말탐지기 조차 할 수 없는 현실
경찰 “증거물과 수사기록 분석 등으로 자백 유도”
1988년 9월7일 일어난 7차 화성연쇄살인 사건 당시 경찰이 뿌린 범인 몽타주. <연합뉴스>
1988년 9월7일 일어난 7차 화성연쇄살인 사건 당시 경찰이 뿌린 범인 몽타주. <연합뉴스>
경찰이 화성연쇄살인 사건의 용의자를 특정했다고 발표한 지 일주일이 넘었으나, 사건의 실체적 진실 규명을 위한 수사는 제자리 걸음을 하는 모양새다. 30여년 전처럼 수사가 답답한 이유는, 공소시효가 지나 강제수사권을 제대로 발동할 수 없는 등 한계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경기남부지방경찰찰청 수사본부는 지난 24일 유력한 용의자인 이아무개(56)씨를 수감 중인 부산교도소에서 만나 4차 대면조사를 했지만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했다. 이씨는 1994년 1월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무기수로 복역 중이다.

경찰은 프로파일러 9명을 동원해 이씨를 상대로 범행 자백을 설득했으나, 앞선 3차례 조사 때와 마찬가지로 화성사건과의 연관성을 강하게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경찰은 1986년 9월~1991년 4월까지 벌어진 10차례 사건 가운데 3차례 사건의 증거물에서 나온 디엔에이(DNA)가 이씨와 일치했다고 밝힌 바 있다.

경찰이 디엔에이라는 이른바 ‘만국 공통의 증거능력’을 확보했음에도 이씨는 입을 열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화성사건의 공소시효가 끝나 소환이나 수색 등 강제수사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사건들의 공소시효는 범행 당시의 형사소송법 규정에 따라 범행 후 15년이 지난 2001년 9월14일~2006년 4월2일 사이에 모두 끝났다.

이에 경찰은 이씨가 복역 중인 교도소를 찾아가 면회 형식으로 접견을 통해 범행 자백을 설득 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그러나 이씨가 접견을 거부하면 사실상 아무런 조처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화성연쇄살인 사건과 나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는 이씨를 상대로 최면수사나 거짓말탐지기 등을 동원해 사건 진상을 밝히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으나, 이 역시 이씨의 동의나 영장없이는 불가능한 형편이다.

‘공소권이 없는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이 한계에 부닥쳐 이씨를 ‘진범’으로 확정짓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다는 얘기다. 결국, 이씨가 자백을 하면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겠지만, 부인하면 수사기관의 일방적인 주장과 추정으로 이 사건은 남을 수밖에 없게 된다.

지난 19일 오전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서 반기수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본부장이 화성연쇄살인사건 용의자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우리나라 강력범죄 사상 최악의 미제사건으로 남아있던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를 30여년 만에 특정했다고 전날 밝혔다. <연합뉴스>
지난 19일 오전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서 반기수 화성연쇄살인사건 수사본부장이 화성연쇄살인사건 용의자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우리나라 강력범죄 사상 최악의 미제사건으로 남아있던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를 30여년 만에 특정했다고 전날 밝혔다. <연합뉴스>
경찰 관계자는 “현재로선 이씨를 자백을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따라서 당시 수사기록과 목격자, 증거물 분석 등을 통해 이씨를 압박해 자백을 끌어 낼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이이다. 그러나 무기수로 복역 중인 이씨가 공소권이 없는 사건에 대해 순순히 자백할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씨의 디엔에이가 검출된 사건(5·7·9차 사건)이외에 다른 사건의 증거물을 분석해 이씨의 자백을 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지난 19일 반기수 2부장을 본부장으로 한 수사본부를 꾸려 집중적인 수사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수사본부는 미제사건수사팀과 광역수사대, 피해자 보호팀, 진술 분석팀, 법률 검토팀, 외부 전문가 자문 등 57명이 참여했다.

한편, 1999년 5월 대구에서 김태완(사망 당시 6살)군이 괴한의 황산테러로 숨진 뒤 영구미제로 남게 될 위기에 몰리자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하자는 여론이 들끓었고. 국회는 2015년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완전히 폐지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안, 이른바 '태완이법'을 통과시켰다. 태완이법은 법이 통과된 2015년 당시 공소시효가 완성되지 않은 살인죄에 대해서는 적용이 가능(부진정소급)하나, 화성연쇄살인사건처럼 이미 공소시효가 지난 사건에는 적용이 불가하다.

김기성 기자 player0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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