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1월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이 벌어졌을 당시 사건 현장을 수색하는 경찰관들. 연합뉴스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 수사 당시 용의자로 지목된 이들이 경찰로부터 고문 등 가혹행위와 인권침해를 당했다고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가 확인하며 국가에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를 권고했다. 이번 진실규명 과정에서 용의자로 몰린 피해자 20명이 추가로 확인되기도 했다.
진실화해위는 9일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 용의자로 지목돼 인권침해를 당한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국가가 사과하고, 이들에 대한 명예회복 조처를 취해야 한다고 권고했다”고 밝혔다. 진실화해위는 전날 열린 48차 위원회에서 당시 경찰에게 가혹행위를 당한 이 사건을 “위법한 공권력 행사로 발생한 인권침해 사건”이라고 결정했다.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은 1986~1991년 이춘재가 경기도 화성 등지에서 여성을 상대로 살인과 성폭행 등을 저지른 사건이다. ‘화성 연쇄살인사건’으로 불리며 장기 미제사건으로 남아 있었지만, 2019년 8월 증거물 유전자 분석 결과, 부산 교도소에 복역하던 이춘재가 범인으로 드러났다. 1988년 8차 사건 범인으로 몰렸던 윤성여(55)씨가 19년을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당시 수사 본부가 비과학적인 증거방법에 매몰돼 이춘재를 용의자에서 배제하고 엉뚱한 사람들을 불법체포하고 자백 등을 강요한 것이 뒤늦게 드러났다.
진상이 드러난 뒤 윤씨 등 피해자 7명은 수사 과정에서 용의자로 지목돼 인권침해를 당했다며 진실화해위에 진실규명을 신청했다. 진실화해위는 경기남부경찰청과 수원지검 등에서 받은 20만장의 수사자료 등을 분석하고 수사에 참여했던 경찰 43명을 조사했다. 진실화해위는 이 과정에서 20명이 추가로 용의자로 몰려 인권침해를 받은 사실을 새로 확인했다.
용의자들은 뚜렷한 범죄 혐의가 없었지만 범행 인근에 살거나 전과자 및 홀로 산다는 이유 등으로 영장 없이 연행을 당했다.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가혹행위를 했고 아크릴 절단용칼, 손톱깎이, 병따개 은색칼 등 허위 증거물을 내밀며 자백을 강요했다. 경찰은 피해자들이 풀려난 뒤에도 일상을 감시하거나 반복적으로 임의동행했고, 이들의 얼굴과 신상을 언론에 공개했다.
진실화해위는 국가에 대해 신청인 및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사과하고, 이들에 대한 피해와 명예 회복을 위한 조처를 할 것을 권고했다. 정근식 위원장은 “이번 결정을 계기로 국가의 적법하고 인권 의식을 갖춘 수사를 진행해 두 번 다시 이런 수사피해자들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라고 밝혔다.
곽진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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