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충북 청주에서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뒤 체포돼 경찰 조사를 받고 있는 화성연쇄살인 사건 용의자 이아무개씨의 당시 모습. <연합뉴스>
화성연쇄살인 사건과 아무런 관련성이 없다고 주장해온 유력 용의자 이아무개(56)씨의 입은 어떻게 열렸을까?
5·7·9차 화성연쇄살인 사건의 증거물에서 이른바 ‘만국 공통의 증거능력’이라고 불리는 디엔에이(DNA)가 검출됐음에도 범행과의 연관성을 부인해온 이씨에 대한 교도소 접견 조사는 지난달 19일부터 9차례 이어졌다.
57명으로 수사본부를 꾸린 경찰은 이씨의 자백을 얻어내기 위해 사건 당시 15만여 쪽에 이르는 수사기록과 증거물 분석에 집중하면서, 베테랑 프로파일러 9명을 동원해 이씨를 압박했다.
그러나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5년째 복역 중인 이씨가 스스로, 그것도 2001년 9월14일~2006년 4월2일까지 순차적으로 공소시효가 끝난 사건에 대해 순순히 자백할 지는 경찰마저 미심쩍어했다.
경찰은 이씨를 입을 열기 위해 5·7·9차 사건의 증거물에서 새롭게 검출된 디엔에이를 들이댔고, 사건 당시 버스안내양을 했던 목격자 조사결과까지 이씨에게 알려준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이씨는 결국 “디엔에이 증거가 나왔다니 할 수 없네요”라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는 게 경찰 관계자의 전언이다. 범행의 결정적 증거인 디엔에이가 이씨를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하면서 심리적 방어선을 무너뜨린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씨는 일부 사건의 경우 범행 지역이나 시간대, 주변 상황 등을 그림까지 그려가며 상세히 설명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때문에 이씨가 일부 연쇄살인범들처럼 자신의 범행을 기록한 별도의 ‘범죄 노트’가 있을 수도 있다고 보고 심도 있게 추궁했으나, 유의미한 결과는 얻어내지 못했다.
경찰 관계자는 자백을 얻어내기 위해 가족이나 친지 등의 협조를 얻지는 않았으며, 프로파일러와 용의자가 정서적 친밀감과 신뢰를 뜻하는 이른바 ‘라포(rapport)’를 형성한 상태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 결과를 제시해 자백을 끌어냈다”고 설명했다.
희대의 엽기 살인 행각을 벌였다고 자백한 이씨는 빠져나갈 수 없는 증거와 경찰의 집요한 추궁 끝에 “언젠가는 이런 날이 와 내가 한 짓이 드러날 줄 알았다”며 입을 연 것으로 전해졌다.
김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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