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 차려진 화성연쇄살인 사건 수사본부.
‘진범 논란’이 일고 있는 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과 관련해, 화성사건의 유력 용의자로 특정된 이아무개(56)씨가 자신이 이 사건도 저질렀다고 자백하는 과정에서 ‘유의미한 진술’까지 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수사본부는 10일 이 사건 관련 브리핑을 열어 “이미 범인이 잡혀 확정판결까지 난 8차 사건도 자신이 범행했다고 밝힌 이씨가, 경찰과 대면조사 과정에서 (진술의 신빙성을 뒷받침할 수 있는)의미 있는 진술도 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그러나 그 진술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대해선 구체적으로 확인해주지는 않았다.
당시 8차 사건의 범인으로 20년 동안 복역을 했던 윤아무개(52)씨가 “당시 경찰의 고문에 의해 허위자백을 해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며 무죄를 주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경찰이 이씨의 자백 내용이 신빙성이 있는 진술이 포함돼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확인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이는 또 이씨가 경찰 수사에 혼선을 주거나 하지도 않은 범죄사실에 대해 허세를 부리며 허위로 자백한 것으로 보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경찰은 이에 따라 “이씨를 상대로 더 많은 자백의 신빙성을 확보하고 이를 검증하기 위한 다양한 신문기법 동원해 당시 범인만이 알 수 있는 내용의 진술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당시 수사기록을 면밀하게 검토하면서 아직 남아 있는 증거물에 대한 감정도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8차 사건의 수사기록과 증거물은 검찰에 모두 송치됐고 보존 기간이 끝나 2011년 이후 모두 폐기된 것으로 확인됐으나, 경찰은 경기도 오산경찰서 문서고에서 당시 수사기록 사본을 찾아냈다. 또 사건 당시 피해자 방 안에서 발견된 토끼풀(클로버) 1점도 남아 있어 국과수에 감정을 의뢰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 관계자는 “8차 사건과 관련된 증거물은 토끼풀 이외에도 창호지와 벽지도 있으나 이는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것이 아니라 이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참고용으로 경찰이 수집한 것이어서 의미 있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해 당시 검찰에 송치하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경찰은 “범인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고 주장하는 윤씨와 두 차례에 걸쳐 조사했고, 이때에도 그동안 언론 등에 보도된 바와 같이 ‘가혹 행위에 의한 허위자백을 했다’는 내용으로 진술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경찰은 8차 사건에 대한 이씨의 자백이 사실일 경우를 대비해, 신뢰성 논란이 있는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증거물 분석 과정과 혈액형 판정 오류 가능성에 대한 조사도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8차 사건의 범인으로 복역한 윤씨는 지난 9일 등 종합편성채널인 <채널A>와의 인터뷰에서 “경찰에 체포된 직후 경찰서가 아닌 야산 정상으로 끌려갔다”는 그는 “(그곳에서) 소아마비로 한쪽 다리를 못 쓰는데, (경찰이) 쪼그려 뛰기를 시켰다. 주먹과 손바닥으로 때리고, 뺨도 때렸다”고 당시 상황을 말했다. 그는 이어 “(경찰이) 3일 동안 잠도 안 재웠고 조서도 경찰이 불러주는 대로 쓰고, 지장도 찍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범행 현장 검증도 경찰이 짜준 각본대로 진행됐다는 증언도 했다.
화성 8차 사건은 1988년 9월16일 당시 경기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의 한 주택에서 박아무개(13)양이 숨진 채 발견된 사건으로, 범행 형태가 앞서 발생한 화성사건과 달랐다. 이에 당시 경찰은 모방범죄로 결론 내렸다. 윤씨는 이 사건의 범인으로 특정돼 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뒤, 2009년 충북 청주교도소에서 가석방됐다.
김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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