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범 논란’이 불거진 화성연쇄 8차 사건의 범인은 지난 20년 동안 옥살이를 하다 최근 재심을 청구한 윤아무개(52)씨가 아니라, 화성사건의 피의자로 특정된 이아무개(56·무기수 복역중)씨인 것으로 경찰이 잠정 결론을 내렸다. 이 사건의 범인으로 검거돼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고 호소한 윤씨는 지난 13일 재심을 청구했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수사본부는 15일 이 사건 중간수사 결과 발표 브리핑을 열고 “화성사건 피의자 이씨의 자백이 사건 현장상황과 대부분 부합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수사본부는 사건 발생일시와 장소, 침입경로, 피해자의 모습, 범행수법 등에 대해 이씨가 진술한 내용이 현장상황과 일치하고 피해자 박아무개(당시 13살)의 신체특징, 가옥구조, 주검위치, 범행 후 박양에게 새 속옷을 입힌 사실에 대해서도 이씨가 자세하고 일관되게 진술하는 점 등을 바탕으로 이런 결론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앞서 경찰은 사건 당시 윤씨 진술이 실제 사건 현장 상황과 큰 차이가 있었다는 사실을 재수사를 통해 밝혀냈다.
경찰은 “범인으로 검거됐던 윤씨의 과거 자백은 현장상황과 모순된 점이 많다”고 밝혔다. 윤씨는 “박양의 방에 침입할 당시 문 앞에 있던 책상을 손으로 짚고 발로 밟은 뒤 들어갔다”고 했지만, 책상 위에서 윤씨의 지문이 발견되지 않았고 책상 위에 남은 발자국도 윤씨의 것과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특히 박양이 숨진 채 발견됐을 당시 입고 있던 속옷에 대한 화성사건 피의자 이씨 최근 자백과 윤씨의 당시 자백이 서로 다른 상황에서 이씨의 자백이 훨씬 구체적이고 실제 상황과 일치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박양은 속옷 하의를 뒤집어 입고 있었다. 이는 속옷을 애초 잘못 입었거나, 누군가 완전히 벗긴 뒤 다시 입혀야 가능하다. 윤씨는 “박양의 속옷을 무릎 정도까지 내린 상태에서 범행하고 다시 입혔다”고 과거 자백했다.
그러나 이씨는 최근 자백에서 “박양이 입고 있던 속옷을 완전히 벗기고 범행한 뒤 이 속옷으로 현장에 남은 혈흔 등을 닦고 새 속옷을 입히고선 현장을 빠져나왔다”고 진술했다. 두 진술만 놓고 보면, 이씨의 진술이 당시 사건 현장을 더 정확하게 묘사한 것이다.
또한, 이씨는 박양 방에 침입할 때 신고 있던 구두와 양말을 벗고 맨발로 침입하면서 양말을 손에 착용한 뒤 박양의 목을 졸랐다고 진술했다. 이는 박양의 목에 남은 흔적과 일치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윤씨는 당시 맨손으로 박양의 목을 졸랐다고 자백했었다.
이에 따라 경찰은 과거 수사관들이 윤씨에 대해 고문 등 위법행위를 저질렀는지와 당시 윤씨가 범인으로 특정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방사성 동위원소 분석이 제대로 이뤄졌는지에 대해 수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이 사건으로 복역한 윤씨가 최근 재심을 청구함에 따라 재심절차가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당시 수사기록을 검찰에 송부했다"고 말했다.
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의 범인으로 검거돼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고 주장해 온 윤아무개(52)씨가 재심청구서를 들고 지난 13일 오전 수원지방법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화성 8차 사건은 1988년 9월16일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 박양의 집에서 박양이 성폭행당하고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경찰은 이듬해 7월 농기계 수리공으로 일하던 윤씨를 범인으로 특정해, 강간살인 혐의로 검거했다. 재판에 넘겨진 윤씨는 같은 해 10월 수원지법에서 검찰 구형대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대법원에서도 형이 확정돼 20년을 복역한 뒤 2009년 가석방됐다.
한편, 화성 사건 피의자 이씨는 8차 사건을 포함해 10건의 화성사건과 다른 4건 등 모두 14건의 살인을 자백한 상태다.
김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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