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의 범인으로 검거돼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고 주장해 온 윤아무개(52)씨가 지난달 13일 재심청구서를 들고 수원지방법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진범 논란’으로 재심이 청구된 화성연쇄살인 8차 사건에 대해 검찰이 직접 수사에 나선 가운데, 당시 윤아무개(52)씨를 범인으로 지목한 결정적 증거였던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감정결과가 조작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사건 전담수사팀을 꾸린 수원지검 “1989년 수사 당시 윤씨를 범인으로 최초 지목하는데 결정적인 증거로 사용된 국과수 작성의 체모(음모)에 대한 감정서가 실제 감정을 실시한 한국원자력연구원의 감정 결과와는 전혀 다르게 허위로 조작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12일 밝혔다. “억울하다”고 주장하는 윤씨를 범인으로 몰았던 체모의 비교 대상 시료와 수치가 조작됐다는 것이다. 검찰은 당시 수사관들을 상대로 누가 어떤 경위로 감정서를 조작했는지를 조사할 방침이며, 당시 국과수 직원들도 불러 경위를 파악할 계획이다.
검찰은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 관련 규정을 준수하면서도 이 사건이 국민에게 알릴 필요가 있는 중요사건인 점 등을 고려해 형사사건공개심의위원회의 의결에 따라 이런 내용을 밝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사건 당시 경찰은 현장에서 체모를 발견해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 보냈고, 국과수는 “‘방사성동위원소 감별법’으로 분석한 결과 혈액형이 비(B)형이며, 체모에 다량의 티타늄이 함유됐다”는 내용을 경찰에 통보했다. 이에 경찰은 화성 일대에서 일하는 기계수리점·나염공장 등 종업원 등 51명을 용의선상에 올려 조사했고, 당시 농기계 수리공으로 일하던 윤씨의 체모가 현장에서 발견된 체모와 동일하다는 국과수 답변을 받아 이듬해 7월 윤씨를 붙잡아 검찰에 넘겼다. 재판부는 이를 근거로 윤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당시 이 감별법은 국내 사법사상 처음으로 재판 증거로 채택돼 화제를 모았다.
국과수의 음모감정결과표가 조작됐을 가능성은 이 사건의 재심을 맡은 등 윤씨의 공동변호인단도 제기한 바 있다. 이들은 지난 11일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음모감정결과표가 여러 개 있는데, 경찰이 윤씨를 범인으로 지목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감정결과표와 윤씨가 경찰에 연행되기 전에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감정결과표상의 ‘범인 체모’의 분석결과가 차이가 크다”며 증거가 조작됐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변호인단은 정보 공개된 수사기록 등을 통해 추가 확인한 결과, 수사기록 어디에도 윤씨의 자발적인 의사에 의해 당시 화성경찰서에 동행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증명할 자료가 보이지 않아 ‘불법체포’였다고 밝혔다. 또 당시 경찰은 1989년 7월25일부터 3일 이상 윤씨를 영장 없이 ‘불법감금’했고, 피의자 신문 전 과정에서 ‘진술거부권’도 알리지 않은 사실도 확인했다고 변호인단은 밝혔다. 이와 함께 변호인단이 수사기록을 분석한 결과, 검찰 송치 전 영장 없이 현장검증이 이루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화성 8차 사건은 1988년 9월16일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박아무개(당시 13살)양의 집에서 박양이 성폭행당하고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범인으로 검거된 윤씨는 20년을 복역하고 2009년 가석방됐으며, 최근 화성사건 피의자 이아무개(56)씨의 자백 이후 재심을 청구한 상태다. 피의자 이씨는 8차 사건을 포함해 10차례의 화성연쇄살인 사건 이외에도 4건의 살인 등 모두 14건의 강간·살인을 저질렀다고 자백했다.
김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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