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인해 학교가 문을 닫으면서 시설농가들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 농민 염현수씨 제공
경기 고양시 내유동에서 채소를 키우는 농민 염현수(53)씨는 최근 비닐하우스 2개 동에 있던 얼갈이 등 봄철 채소를 모두 뽑아 버렸다. 코로나19로 학교가 개학을 3주 연기하자 학교급식용 친환경 농산물을 납품할 곳도 사라졌기 때문이다. 채소에는 이미 꽃대가 올라왔다. 상품가치가 사라진 것이다. 염씨는 “지난해 11월 씨를 뿌려서 겨우내 키웠는데, 버릴 때 그 심정은 말도 못 한다. 1천만원 정도 피해를 봤는데 3명의 외국인 노동자 월급도 못 줄 형편”이라고 말했다. 일부 농민은 아예 밭작물을 갈아엎는가 하면 상자당 8800원씩 납품하던 배추를 3분의 1 값인 3천원에 시중에 내다 팔고 있다.
전남 나주시 노안에서 산란닭 4천 마리를 키우는 ‘행복한 농사꾼’ 대표 김경호씨는 “3월에 달걀 1300판(한판 30개)을 납품하기로 학교와 계약을 했는데 아직 한판도 내지 못했다. 300판은 온라인·직거래로 가정에 소량 판매하고 나머지 1천판은 끌어안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달걀이 팔리지 않아도 닭 사료는 계속 줘야 하기 때문에 개학이 더 미뤄지면 큰일”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로 학교 개학이 연기되면서 농가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경기도의 경우 농가 피해 규모는 14개 품목 233t에 피해액은 24억3300만여원에 이른다. 전국적으로 친환경 농산물을 생산하는 가구는 5만1천여곳으로 이 가운데 30~40%가 학교에 납품하고 있어 실제 피해액은 더 클 것으로 추정된다. 초·중·고교 77곳에 156개 품목을 공급하는 이병백 광주 광산구 학교급식지원센터장은 “학교에 식재료를 대는 농민들은 친환경 농사를 짓기 때문에 다른 판로를 마련하기 어렵다. 대농은 공판장에 내지만, 상추·아욱 등을 기르는 소농은 개학을 손꼽아 기다리며 애를 태우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피해를 지원하기 위해 추가경정예산(추경)을 세우면서 농업 부문을 사실상 제외한 점도 농민들을 힘들게 하는 요소다. 농민단체 등은 “정부가 추경에서 농업과 농민대책은 반영하지 않았다”며 “농민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경기 남양주시 다산동 ‘채소마을’의 농민 정상용(49)씨는 “계약 재배라면 생산원가라도 보전해줘야 하는데 모든 책임을 농가가 지게 한다”며 “메르스 때도 납품을 못 하면 농가 책임이었다. 이번 코로나19 국면도 다르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농림축산식품부는 “기금운용계획을 변경해 483억원을 증액하고 임산부 친환경농산물지원 시범사업을 통해 친환경 농산물 수요기반을 확대하는 한편 친환경 학교급식 농산물은 재해의 경우 농업재해대책기금을 통한 융자사업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농민들은 피해지원을 위해 기금운용계획 변경이 아닌 별도 예산을 짜야 한다고 지적한다. 박종서 전국친환경농업인연합회 사무총장은 “코로나 추경예산은 별도 예산이지만, 농림부의 농민 피해지원책은 기금을 변경하는 것에 불과하다”며 “피해가 큰 시설농가 농민이 당장 밭을 갈아엎는 상황에서 피부에 와닿을 수 있는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농민들을 돕기 위한 경기도의 꾸러미 상자 판촉. 예약 2시간 만에 완판됐다.
한편 농민들의 어려움이 알려지면서 지방정부와 시민들의 ‘착한 소비자 운동’이 눈길을 끌고 있다. 충남 천안시는 개학 연기로 어려움을 겪는 지역 농가를 위해 딸기 판매에 나섰다. 경기도도 지난 8일 학교급식 계약 재배를 맡은 딸기 생산농가 13곳에서 나온 딸기 9.5t을 모두 팔았다. 지난 11일에는 시금치, 상추, 대파 등 친환경 학교급식 농산물 11가지 품목이 담긴 ‘꾸러미 상자’ 7200개를 하루 만에 모두 판매하기도 했다. 강원도에서는 최문순 강원도지사가 트위터를 통해 감자 판매 홍보에 나서면서 강원도 감자 1400상자가 11일 1시간 만에 조기 품절되는 일도 있었다. 주문이 폭주해 감자 판매 누리집이 한때 다운되기도 했다.
홍용덕 안관옥 최예린 권지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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