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의 범인으로 검거돼 20년 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고 주장해 온 윤아무개(53)씨가 지난해 11월13일 재심청구서를 들고 수원지방법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1980대 중후반 경기도 화성지역에서 일어난 연쇄살인 가운데, 8차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20년 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고 주장해온 윤아무개(53)씨의 재심청구와 관련해 첫 재판이 19일 수원지법에서 열린다. 그러나 이 사건의 범인이라고 자백한 이춘재(57)씨는 법정에 서지는 않게 됐다. 검찰과 변호인 쪽 모두 이씨를 증인으로 신청했으나, 법원이 ‘일단 보류’ 방침을 세웠기 때문이다.
수원지법 형사12부(재판장 박정제)는 19일 오전 11시 501호 법정에서 재심 첫 공판을 연다. 이번 공판에서는 검찰의 재수사 경과 등이 포함된 프리젠테이션, 변호인의 의견 개진, 사건 현장 체모 감정 등을 위한 영장 발부 여부의 결정, 첫 증인신문 대상 선정 등이 이뤄질 예정이다.
재판에서는 사건이 일어난 당시 증거였던 현장 체모 2점을 감정하기 위한 영장을 재판부가 발부할지가 관심이다. 당시 국과수와 경찰, 검찰이 윤씨를 범인으로 지목한 결정적 증거가 국가기록원에 보관돼 있어 영장집행을 통해 사건 현장 조작 의혹이 풀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달 13일 열린 공판준비기일에서 검찰은 “(범행을 자백한)이춘재의 진술을 청취해 진술의 신빙성이 있는지 판단해야 한다”며 법정에 세워 달라고 요청했다. 이날 검찰은 윤씨의 재심이 이씨의 자백 등 새로운 증거의 발견, 당시 수사기관의 불법체포 및 감금·가혹행위 확인,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서의 치명적 오류 발견 등이 사유가 된 점을 들었다. 또 윤씨의 대리인인 박준영 변호사와 법무법인 다산도 8차 사건의 실체적 진실 확인을 위해 이춘재와 당시 수사관계자 등을 법정에 세워서 신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박 변호사는 “이춘재가 자백한 경위는 물론, 사건 당시의 상황도 밝혀야 한다. 이춘재 자신도 당시 왜 수사 선상에 오르지 않았는지 등을 궁금해하고 있다”며 이씨를 법정에 출석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이날 재판부는 검찰과 변호인이 이춘재씨를 포함해 신청한 증인 24명 중 이씨를 제외한 전원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춘재의 증인 채택 여부는 재판부가 심증을 형성한 다음에 소환 여부를 결정하는 게 맞을 것 같다”고 밝혔다.
‘8차 사건’은 1988년 9월16일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 박아무개(당시 13살)이 자신의 집에서 성폭행당하고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당시 경찰은 이 사건이 연쇄살인을 모방해 벌인 강간·살해 사건으로 보고 이듬해 윤씨를 검거했다. 윤씨는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상소해 “경찰의 강압 수사로 허위 자백을 했다”며 혐의를 부인했으나, 2심과 3심은 모두 이를 기각했다.
20년을 복역하고 2009년 가석방된 윤씨는 이춘재씨의 범행 자백 이후인 지난해 11월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은 지난 1월 이를 받아들여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다. 한편, 이씨의 자백 이후 재수사에 나선 경찰과 검찰은 당시 부실수사와 증거조작 등이 있었다고 판단하고 수사 경찰과 검사 등을 입건하는 등 이 사건도 이씨가 저지른 것으로 결론을 내린 상태다.
김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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