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시의회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의장단 선출과정에서 도를 넘은 짬짜미 선거를 진행했다고 주장하는 시민사회단체들이 지난 13일 안양시 의회 앞에서 규탄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안양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제공
“반드시 12표는 나와야 되는데… (중략) 기표용지 선 안에만 이름이 들어가면 되는데, 자기 번호를 딱 외우세요…. ○○○ 의원님은 1번, △△△ 의원님은 2번….”
경기도 안양시의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특정 의원을 시의회 의장으로 밀어주기 위해 투표 전 ‘짬짜미’는 물론 무기명 비밀투표 원칙까지 무시한 정황이 담긴 녹취록 가운데 일부다.
전국 곳곳의 지방의회가 의장 선거를 두고 잡음이 일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시민 대의기구인 지방의회에서 당리당략을 위해 풀뿌리민주주의가 얼마나 허무하게 흔들리고 있는지를 실감케 하고 있다.
16일 <한겨레>가 입수한 안양시의회 민주당 의원총회 녹취록을 보면, 이들이 의회 후반기 의장 선거를 앞두고 ‘이탈표’와 ‘반란표’를 막기 위해 어떤 모의를 했는지 적나라하게 나와 있다.
지난 3일 의장 선거 직전 열린 의원총회에서 회의를 주재하는 한 의원은 “믿고 신뢰를 하는데 여기서 했던 얘기 또 저기서 새 나가면 안되니까”라며 비밀 유지를 당부했다. 그는 이어 참석한 12명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며 번호를 지정했다.
이어 한 의원은 “12명에서 한 표라도 이탈이 있을 때 우리 12명이, 어? 의심받으면서 그런 거 이렇게 (경기)도당에서나 어디서 조사가 나왔을 때 다 우리가 임해야 돼요”라며 이탈표가 나와 의장직을 야당에 빼앗겼을 경우, 상부의 질책을 염려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는 이어 “투표 요령을 철저하게 지켜주시고 혹시라도 지키지 않았을 때 그게 불이익이 돼서 본인한테 갔을 때 후회하지 않는 그런 오늘이 됐으면 한다”며 의원들을 압박하기도 했다.
또한, 의장으로 지명된 사람으로 보이는 의원은 “우리가 이렇게 쓸 정도까지 이렇게 하는 건 다 제 부덕의 소치라고 생각한다”며 울먹이기도 했다. 자신 때문에 비정상적인 방법을 동원하게 돼 미안하다는 뜻으로 읽힌다.
안양시의회는 지난 3일 제8대 시의회 하반기 의장으로 12표를 얻은 더불어민주당 정맹숙 의원을 선출했다. 안양시 의회는 더불어민주당 13석, 미래통합당 8석으로 꾸려져 있다.
의원 수 13명인 민주당은 최근 2명이 의장 후보 경선을 벌였으나, 1명이 경선 결과에 불복해 잡음이 났다. 때문에 이탈표나 반란표가 나올 경우 의장 자리를 야당에 빼앗길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결국, 민주당은 가상으로 기표용지를 위, 아래, 왼쪽, 오른쪽 등 12곳으로 나눈 뒤, 의원마다 부여받은 번호에 따라 지정된 자리에 당에서 의장 후보로 정한 의원의 이름을 쓰게 하는 방법을 썼다는 게 시민단체의 주장이다.
안양시의회 의장 선거는 일반 선거와 달리 후보자가 따로 출마하지 않고, 의원 개인이 지지하는 동료 의원의 이름을 기표용지에 써내는 이른바 ‘교황 선출방식’이다. 대다수 지방의회가 이런 방식을 쓰고 있다. 이에 ‘안양시민사회단체연대회’는 지난 13일 기자회견을 열어 “비밀투표 원칙을 어겼다”며 의장 선출은 무효라고 주장했다. 이어 또 다른 시민단체인 ‘시민정의사회실천위원회’는 “민주주의 꽃인 선거를 유린했다”며 안양시의회 민주당 소속 의원 12명을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수원지검 안양지청에 15일 고발했다. 현행 지방자치법 제48조 1항에는 ‘시·군 및 자치구 의장과 부의장 각 1명을 무기명투표로 선출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김기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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