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에 시퍼런 멍이 든 세 살배기 남자아이가 지난 11일 서울 강동구의 한 병원을 방문했다. 아이의 어머니인 ㄱ(26·베트남 국적)은 의료진에 “아이가 다쳤다”고 했다. 아이의 얼굴뿐만 아니라 몸과 다리 등 곳곳에서 멍 자국을 발견한 의료진은 아동학대를 의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13일 경기도 하남경찰서 등의 설명을 종합하면, 이 아이는 국적도 없는 ‘무적자’ 신분이었다. 2014년 1년 단기 비자로 입국한 ㄱ이 2017년 같은 베트남인 남편과 사이에 아들을 낳았지만, 출생신고는 하지 않았다. ㄱ과 남편 모두 불법체류자 신분이었기 때문이다.
ㄱ과 남편은 일용직을 전전하며 생계를 유지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다가 지난 9월 ㄱ의 남편이 출입국·외국인청 단속에 적발돼 모국으로 강제 출국당하면서 혼자 생계를 이어나가고 아들을 키운 것으로 파악됐다. ㄱ은 아이 얼굴에 든 멍을 본 지인의 설득 끝에 치료를 위해 병원을 방문했다. ㄱ은 경찰 조사에서 “말을 잘 듣지 않아서 아이를 때렸다”고 진술했다.
아이는 멍뿐만 아니라 일부 장기가 파열된 것으로 진단돼 현재 경기도 권역외상센터에서 치료를 받고 있으며,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다. 하지만, 국적이 없는 ‘무적자’ 신분이어서 병원 치료에도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아이 치료와 퇴원 뒤 생활 등을 어떻게 해야 할 지 고심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아동보호전문기관과 다문화센터 등을 통해 이 가족을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다. 다만, 불법체류자인 ㄱ이 도주할 우려가 있어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고 말했다.
이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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