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우석(26)씨 어머니 김영란(50·왼쪽에서 두 번째)씨가 26일 대전시청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씨의 생전 모습이 담긴 사진을 들고 오열하고 있다.
벗어날 수 없는 덫에 걸린 심정이었을까. 지난 9월26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이우석(26)씨는 지난 1월 임용된 대전시 새내기 9급 공무원이었다. 이씨는 하루 뒤인 9월27일 휴직신청을 할 예정이었다. 숨지기 전 이씨는 가족에게 “정신과 진단서까지 첨부해 휴직신청했는데 반려되면 어쩌나. 시청 안에 소문나는 것도 무섭다”고 말하며 불안해했다고 한다.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비극은 지난 7월 부서가 바뀌며 시작됐다. 기능직이 대부분인 팀에서 우석씨는 유일한 행정직이었다.
26일 대전시청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씨 어머니인 김영란(50)씨는 “선배 주무관이 ‘출근 한시간 전인 8시 전에는 나와 과장님 책상을 정리하고 물과 커피를 따라 놓아야 한다’고 했다고 한다. 그 지시가 부당하다고 여긴 우석이는 ‘그럴 수 없다’고 거절했는데, 그때부터 괴롭힘이 시작됐다”며 “(팀원들에게) 업무적으로 물어봐도 대답하지 않았고, 아예 우석이를 투명인간 취급하며 대화에 끼워 주지 않았다. 팀 안에서 점점 고립시키며 괴롭혔다”고 말했다.
이씨는 “ 7급 행정직이 하던 일을 갓 임용된 우석이가 도맡았는데, 모르는 부분을 물어도 (직원들은) ‘알아서 해라. 지침 보고 해라’고만 했다”며 “그러면서 ‘잘못되면 네 책임이다. 감사받을 수 있다’고 압박했고, 제 아들은 적절한 직무교육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과중한 업무부담과 책임감으로 하루하루 말라갔다. 밥도 잘 먹지 못했고, 3개월 동안 5㎏이 빠졌다”며 오열했다.
고 이우석씨의 유족과 유족 대리인 법무법인 디라이트의 조선희 변호사가 26일 대전시청 북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대전시의 제대로 된 진상조사와 관련자 징계를 촉구하고 있다.
익숙지 않은 일을 주변 도움없이 하려다 보니 야근도 잦아졌다. 지난 8월 중순부터는 이상반응이 몸으로 나타났다. 숨쉬기 어려울 정도의 가슴통증에 일하다 뛰쳐나와 병원을 찾을 정도였다. 이씨는 병원에서 불안, 불면, 우울감 등을 호소했다. 진료기록에는 “회사 사람들 때문에, (직원들이) 행정의 모든 것을 다 시키고, 점점 비웃고 무시하고, 협조가 안되고, 투명인간 취급하고”라는 이씨 호소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씨 아버지 이동수(58)씨는 “결국 휴직하기로 결심하고 9월24일 퇴근 전 팀장에게 의사를 밝혔지만, ‘꼭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 휴직이 네 생각처럼 안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유일한 탈출구로 여기고 있던 휴직마저 안될 수 있다는 두려움과 휴직 뒤 다시 해당 팀으로 복직할 수도 있다는 부담감, 자신을 왕따시키고 괴롭힌 팀원들 때문에 무너질 대로 무너진 자존감 때문에 스스로 삶을 포기했다”고 울분을 쏟아냈다.
대전시는 현재 이 사안과 관련한 감사를 진행 중이다. 시는 다음달까지 관련 조사를 마치고, 변호사·노무사 등이 참여한 갑질심의위원회를 꾸려 갑질과 직장내괴롭힘 여부를 판단할 계획이다. 유족은 이날 허태정 대전시장과 대전시 감사위원회 앞으로 △가해자들에 대한 신속한 감사 ·징계 절차 진행 △직장 내 갑질 등 괴롭힘에 의한 죽음에 대한 ‘순직 ’ 처리 △대전시 청사 내 추모비 건립 등을 요구하는 의견서를 냈다 .
김명연 대전시 감사위원회 감사기획팀장은 “고인의 메신저 내용 등 관련 자료를 분석했고, 관련자 조사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최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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