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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은행강도 2명이 끝?…그날의 경찰은 “최소 1명 더 있다”

등록 2022-09-01 16:42수정 2022-09-01 17:05

범행 전후 피의자들 행적 평범…제3의 공범 가능성
대전경찰청 미제사건전담수사팀 형사가 지난달 31일 사무실에서 대전 국민은행 권총 강도살인사건 수사 기록을 정리하고 있다. 송인걸 기자
대전경찰청 미제사건전담수사팀 형사가 지난달 31일 사무실에서 대전 국민은행 권총 강도살인사건 수사 기록을 정리하고 있다. 송인걸 기자

대전 국민은행 권총 강도살인 사건 피의자가 21년 만에 경찰에 붙잡혔다. 하늘이 도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검거 과정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다. 1일 경찰은 검찰 송치를 하루 앞두고 범행을 시인한 이아무개(51)씨 외에 공범 이아무개(52)씨도 범행 사실을 진술했다고 밝혔다. 공범 이씨는 이날 오전 ‘자신이 순찰 경찰관을 차로 치고, 은행 지하주차장에서 권총을 쏘는 등 범행을 주도했다’고 진술했다.

기적적인 유전자 확인…2017년 불법 도박장 담배꽁초서 찾았다

지난 25일 오전 8시30분 대전 서구의 한 주택가, 대전경찰청 형사들이 집을 나서던 이아무개(51)씨의 팔을 잡았다. 이씨는 당혹스러운 표정이 역력했지만, 순순히 경찰차에 올랐다. 2001년 12월21일 발생한 대전 국민은행 권총 강도 살인사건의 얽힌 실타래가 21년 만에 풀리는 순간이었다. 경찰은 이날 오후 4시께 이씨가 공범이라고 밝힌 이아무개(52)씨를 강원도 정선의 한 찜질방에서 붙잡았다. 공범 이씨는 주거지가 불명확했지만, 주민등록번호가 확인돼 본인 명의의 휴대전화 위치를 추적해 검거할 수 있었다. 기적이었다. 전광석화 같은 검거작전을 끝낸 경찰은 27일 이들을 강도살인 등 혐의로 구속했다.

지난 3월 경찰이 피의자 이(51)씨의 유전자를 확인한 것도 기적으로 꼽힌다. 2017년 대전경찰청 미제사건전담수사팀(미제팀)은 증거물 보관창고에서 사건 당시 수거한 마스크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 재감식을 의뢰했다. 이 마스크는 사건 발생 당시에 감식했지만, 용의자를 특정하는 데 실패했다. 2018년 1월, 미제팀 앞으로 국과수의 감식 결과서가 도착했다.

“와 이게… 이게…”

결과서를 보던 형사는 말을 잇지 못했다. 결과서는 ‘1명의 유전자(DNA) 염기서열이 확인됐다’, ‘추출한 유전자 정보가 2015년 충북경찰이 불법 컴퓨터오락실(도박장)에서 수거한 증거품 가운데 담배꽁초 1점과 일치한다’고 기록돼 있었기 때문이다.

미제팀은 14년 만에 처음으로 드러난 용의자를 찾기 위해 불법 컴퓨터오락실 사건의 실체 파악에 나섰다. 유전자 등록은 성폭력 등 11개 특정 범죄 피의자가 대상인데, 도박장 관련자의 유전자를 감식한 것은 예외였다. 백기동 대전경찰청 형사과장은 “충북 음성의 빌라 건물에서 컴퓨터게임 도박을 한다는 제보를 받고 출동했으나 모두 도주한 뒤였다고 한다”며 “단속 경찰이 도박 혐의자를 검거하려고 현장에서 많은 유류품을 감식 의뢰했는데 그중에 이씨의 것이 포함돼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동 걸린 차만 훔치는 그놈, 20년 행적 역추적해 덜미 

대조군이 없는 유전자만으로 신원을 밝히기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당시 신원이 확인된 오락실 관계자 1명이 수사의 실마리였다. 경찰은 ‘간판도 없는 도박장’이라는 점에 착안해 알선책들과 이들이 데려온 도박꾼들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4년여 동안 구성원들은 바뀌었지만, 미제팀은 대상자를 1만5천명 → 5천명 → 3백명으로 압축하고 신원을 밝히는 데 집중했다. 그리고 지난 3월 도박장 관계자로 분류된 그룹이 남긴 담배꽁초를 단초로 한 수사에서 ‘시동 걸린 차량만 훔치는’ 이씨를 찾아냈다. 국민은행 사건, 권총 탈취 사건 당시 사용된 차량은 모두 시동이 걸린 채 도난당한 공통점이 있었다.

“정말 다 왔다.”

미제팀 형사들은 환호했다. 미제팀 관계자는 “너무 기뻐 말도 안 나왔는데 한편으로는 증거가 부족해 불안했다”고 했다. 이때부터 형사들은 금융수사, 통신수사, 주변 탐문수사 등을 통해 이씨의 20년간 행적을 역추적하며 증거를 찾았다. 21년 전 수거한 다른 유류품(손수건)에서도 이씨 유전자가 검출됐다. 경찰이 확인한 이씨의 삶은 가장으로서 평범했다.

경찰이 지난 25일 이씨 등을 검거한 것은 금융수사, 통신수사를 할 경우 본인에게 수사 사실을 통보하는 최대 유예기간인 6개월 시한이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검찰과 협의해 이들이 수사받아 왔다는 사실을 알기 전에 검거하는 게 최선이라고 의견을 모았다”고 말했다.

이씨는 경찰에서 범행을 대부분 시인했다. 공범인 또 다른 이씨도 1일 오전 “자신이 범행을 주도했다”고 입을 열었다. 이성선 대전경찰청 강력계장은 “공범 이씨는 ‘불법음반 도매업을 하다 두 차례 단속된 뒤 국가에 불만을 품고 있다가 은행을 털어 보상받을 생각을 했다고 한다. 범행하려고 경찰관서 주변을 배회하다 순찰 경찰관의 총기를 탈취하고, 은행 창구에서 범행하려다가 현금수송차량을 보고 대상을 바꿨다고 한다’”고 전했다. 경찰에서 이씨는 “권총은 대전 동구의 한 대학 주변에 숨겼는데 이 지역이 개발된다고 해 2008년께 꺼내 둔기로 잘게 부숴 여러 곳에 버렸다”고 말했다.

대전경찰청 호송차량이 경찰청 후정에 대기하고 있다. 송인걸 기자
대전경찰청 호송차량이 경찰청 후정에 대기하고 있다. 송인걸 기자

송충이가 솔잎 대신 소고기를? 풀리지 않는 의혹들

피의자들은 자신들 외에 다른 공범은 없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경찰은 다른 공범의 존재 여부를 수사하고 있지만,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보는 분위기다. 그러나 이 사건을 수사했던 당시 수사본부와 전 수사관계자들 판단은 다르다. 2001년 사건 발생 당시 수사본부는 범인이 최소 3인조 이상이라고 추정했다. 범인들은 국민은행 둔산지점 지하주차장에서 미리 대기하고 있다가 현금수송차량에서 돈가방을 내리는 순간 범행했고, 경찰 권총 탈취 사건도 범행 현장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순찰 경찰을 차량으로 덮치는 등 현금수송차량과 경찰관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범행을 계획하고, 범행 대상의 이동 상황을 이들에게 실시간 중계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피의자들은 국민은행 권총 강도살인 사건 외에는 다단계, 저작권법 위반, 차량절도 등 비교적 가벼운 범죄와 관련된 것으로 전해진다.

발생 당시 둔산동을 담당했던 전직 경찰은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산다. 사건이 발생하면 동일수법 전과자들부터 용의 선상에 올리는 이유”라며 “국민은행 사건은 경찰 권총을 탈취하고 범행 차량과 도주 차량을 준비하는 등 치밀한 계획에 따라 벌인 완전범죄 수준의 범행이다. 피의자들이 이런 사이즈의 범행을 할 수준인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백기동 대전경찰청 형사과장은 “피의자들은 범행 현장을 여러 차례 답사해 범행 대상의 이동 동선을 잘 알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 탐문수사에서도 1~2명을 목격했다는 진술이 대부분”이라면서도 “공범이 더 있을 가능성은 열어둔 채 수사하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2001년 12월21일 오전 10시께 대전시 서구 둔산동 국민은행 충청지역본부 지하 1층 주차장에서 현금을 수송하던 이 은행 용전동지점 현금출납과장 김아무개(당시 45살)씨를 살해하고 현금 3억원이 든 돈가방을 빼앗아 달아난 혐의(강도살인 등)로 2일 검찰에 송치된다. 이들은 같은 해 10월15일 새벽0시께 대전시 대덕구 비래동 ㄷ주유소 앞길에서 순찰하던 경찰을 훔친 차로 치어 중상을 입힌 뒤 실탄 4발, 공포탄 1발이 장전된 3·8구경 리볼버 권총을 탈취해 범행에 사용한 혐의도 받고 있다.

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최예린 기자 floy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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