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광주문화재단 주최로 열린 `임을 위한 행진곡 창작 40주년 기념행사'에서 참석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광주문화재단 제공
“군대에서 두번 째 휴가를 나왔을 때 노래굿 제작에 참여했습니다.” 5·18항쟁과 한국 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 제작에 참여했던 김선출 전남문화재단 대표는 30일 “병무청에 전화해 군대 때 나의 두번 째 휴가 날짜를 확인했더니 1982년 5월4일부터 18일까지였다”며 이렇게 말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녹음·제작한 날이 1982년 5월8일일 가능성이 크다는 증언이다. 이는 고 윤상원·박기순 열사의 영혼결혼식(2월20일) 두 달 뒤인 그해 4월 말 녹음됐다고 알려진 것과는 다른 증언이다. 노래굿 제작에 참여한 임희숙씨도 “전남 고흥 한 중학교에 교사로 재직 중이어서 토요일에만 광주에 왔다. 밤새 녹음을 한 뒤 일요일에 고흥으로 돌아갔다”며 김 대표의 증언을 뒷받침했다.
김종률씨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작곡한 원곡 노트. <한겨레> 자료 사진
이 발언은 지난 27일 광주문화재단 주최로 광주극장에서 열린 ‘임을 위한 행진곡 창작 4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한 황석영 작가 등 당시 광주 문화패들의 좌담회에서 나왔다. 당시 노래굿 테이프 녹음·제작에 참여한 이는 황석영·홍희담·전용호·김종률·오정묵·임영희·임희숙·김은경·윤만식·김선출·김옥기·고 이훈우씨 등 12명이다. 좌담회엔 황석영·전용호·임희숙·윤만식·오정묵·김선출·임영희씨 등 7명이 참석했다.
김선출 대표가 두번 째 휴가를 나왔던 기간의 토요일은 5월8일과 5월16일이지만, 5월8일 노래굿 테이프 제작이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다. 당시 실무를 맡았던 전용호 작가는 “녹음했던 때가 김선출 대표가 두번 째 휴가를 나온 지 며칠 안 됐을 때였다”고 말했다. 노래굿 테이프 제작은 비밀리에 진행됐다. 황 작가의 2층 거실 유리창에 소리가 새나가지 않도록 담요를 붙였다. 전용호 작가는 “사람들에게 ‘황 작가의 집에서 저녁 식사나 하게 오후 3~4시까지 오라’고만 했다. 오는 대로 노래를 배우고 기타 연주를 익혀 밤 10시 이후 가정용 녹음기(카세트) 테이프로 녹음했다”며 “개 짖는 소리와 기차 지나가는 소리가 들어가 한 차례 더 녹음해 원판 테이프가 두 개”라고 말했다. 30분짜리 노래굿 원곡 테이프는 한 달 후께 서울 세계기독청년협의회(EYC) 한국지부로 건네져 2000개가 복사됐다. 전용호 작가는 “이후 전국의 민주화운동 단체들과 대학가 사회과학 서점을 통해 널리 보급돼 전국에 전파됐다”고 말했다.
푸른솔 합창단과 가수 오정묵씨가 지난 27일 광주극장에서 열린 `임을 위한 행진곡 창작 40주년 기념행사'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광주문화재단 제공
노래굿에 들어있던 ‘임을 위한 행진곡’ 원곡 가사 중 일부가 변형돼 전파된 이유를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가사는 고 백기완 선생의 미발표 장시 ‘묏비나리’(1980)의 한 부분을 차용해 황석영 작가가 지었고, 작곡은 전남대생 김종률씨가 맡았다. 전남대 국악반 출신으로 노래굿에서 넋을 불러내는 사설 등을 했던 임희숙씨는 “원곡에선 ‘앞서서 가나니’라고 작사돼 녹음할 때 그렇게 불렀는데, 훗날 ‘앞서서 나가니’로 바꿔 사람들이 노래를 불러 전파됐다”고 말했다.
가사 중 ‘흔들리지 말라’는 대목도 지금은 ‘흔들리자 말자’로 불리고 있다. 임희숙씨는 “이 대목은 백기완 선생의 원시 ‘묏비나리’에도 ‘흔들리지 말라’로 나온다”고 말했다. 민중가요 연구자 정유하 박사는 “‘흔들리지 말라’는 가사는 망자들이 산 자에게 하는 엄중한 부탁의 의미가 있을 수 있다. ‘흔들리지 말자’라는 가사로 바뀐 것은 민주화운동 현장에서 다짐하듯 불렀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깨어나 소리치는’이라는 원곡 가사는 지금은 ‘깨어나서 외치는’으로 바뀌어 불린다. 정 박사는 “노래를 부르고 전하는 사람들이 가사를 바꾼 사례다. 하지만 노래의 변용이 이뤄졌다는 것을 받아들이더라도 앞으로 원래 가사로 불러 그 연원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한편 ‘임을 위한 행진곡’ 등 노래 7곡과 사설 2개가 포함된 노래굿 <빛의 결혼식> 녹음·제작은 광주광역시 북구 운암동에 위치한 소설가 황석영의 집(현재 광주문화예술회관 국악당 터)에서 이뤄졌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테이프에 실린 7곡 중 마지막 곡으로, 오정묵씨가 불렀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사진 광주문화재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