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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죄·배상받기 전엔 못 죽어”…강제동원 피해자의 ‘한 맺힌’ 편지

등록 2022-09-02 17:24수정 2022-09-03 02:30

박진 외교장관, 광주서 피해자들 처음 만나
양금덕씨 “정부는 뭐가 무서워 말 못 하나”
전범기업 자산매각 절차 장기화 전망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이춘식 할아버지가 2일 자택을 방문한 박진 외교부 장관에게 강제동원 피해 해결을 당부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이춘식 할아버지가 2일 자택을 방문한 박진 외교부 장관에게 강제동원 피해 해결을 당부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진 외교부 장관이 광주를 찾아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를 처음 만났다. 박 장관은 피해자 의견을 경청하겠다면서도 대법원에 제출한 의견서를 철회할 의사는 없다고 밝혀 시민단체의 반발을 샀다.

2일 오후 1시 박 장관은 고속철을 타고 광주에 도착해 광산구에 사는 이춘식(98)씨의 자택을 방문했다. 이씨는 1943년 1월 일본 이와테현 일본제철 가마이시제철소로 강제 동원됐고 해방 전까지 미군 포로수용소 감시원 생활도 했다. 그는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해 2018년 10월30일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다.

이씨는 딸과 함께 박 장관을 맞으며 “바쁘신데 서울에서 와주셔서 고맙다. 스물두살 때 일본제철에서 고생하고 군 생활까지 했는데 임금을 받지 못했다. 살아생전에 일본한테 사죄와 보상을 받고 싶다. 재판 결과를 매듭지어 달라”고 말했다. 박 장관은 “일본과 외교교섭을 통해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하겠다”고 답했다.

이어 박 장관은 광주 서구 양동에서 사는 양금덕(93·여)씨의 자택을 방문했다. 양씨는 1944년 5월 일본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 항공기제작소로 동원돼 해방 뒤 귀국할 수 있었다. 그는 1999년 3월 일본 법정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해 2008년 11월 최종 패소한 뒤 2012년 10월 한국 법원에 다시 소송을 제기했고 2018년 11월 대법원 최종 승소 판결을 얻었다.

양씨는 “2009년 후생연금 탈퇴수당으로 한국돈 1천원을 받았다. 대법원에서 승소했는데 몇년째 사죄도, 배상도 받지 못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뭐가 무서워서 말 한마디를 못하냐”며 A4용지 1장 분량의 자필 편지를 건넸다.

박진 외교부 장관이 2일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의 광주 자택을 방문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박진 외교부 장관이 2일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의 광주 자택을 방문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자필 편지에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일본에 가서 죽도록 일만 하고 돈은 받지 못했다. 결혼한 뒤 (위안부로 오해받아) 손가락질받으며 살았다. 돈 때문이라면 진작 포기했다. 일본에 사죄와 배상을 받기 전에는 죽어도 죽지 못하겠다”고 적혀 있었다.

박 장관은 피해자 면담이 끝난 뒤 언론 인터뷰에서 “피해자분들의 말씀들을 잘 정리해서 일본 쪽에 잘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대법원에 제출한 의견서에 대해서는 “법령과 절차에 의해서 정당하게 한 것으로, 법원 판결에 영향을 주거나 관여하는 것이 전혀 아니다. 철회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국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은 “오늘 박 장관은 피해자에게 의견서에 대해선 사죄나 한마디 언급도 하지 않아 매우 유감”이라며 “오늘 피해자와의 만남이 ‘보여주기식 쇼’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양씨 등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진행 중인 미쓰비시 국내자산 현금화 절차는 장기화할 전망이다. 앞서 전범기업이 배상에 나서지 않자 생존 원고인 양씨는 미쓰비시중공업의 한국 내 상표권 2건, 김성주(93·여)씨는 특허권 2건을 압류했다. 하지만 이를 매각하는 특별현금화명령 소송 대법원 판결을 앞둔 상황에서 김씨 사건 주심이었던 김재형(57·사법연수원 18기) 대법관이 6년 임기를 마치고 2일 퇴임해버렸다. 새 주심대법관이 지정되더라도 사건을 파악하는 데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를 두고 시민단체 등에서는 대법원이 한-일 관계 파국을 우려해 판단을 미루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가 정부에 피해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달라고 촉구하는 편지를 쓰고 있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제공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가 정부에 피해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달라고 촉구하는 편지를 쓰고 있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제공

김용희 신민정 기자 kimy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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