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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허위사실 처벌 조항과 ‘표현의 자유’

등록 2020-12-25 20:08수정 2020-12-26 02:00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전두환씨가 지난 4월27일 사자명예훼손사건 재판 인정신문에 출석하기 위해 광주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전두환씨가 지난 4월27일 사자명예훼손사건 재판 인정신문에 출석하기 위해 광주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최진석 서강대 명예교수의 ‘나는 5·18을 왜곡한다’는 시를 읽은 것은 지난 12일 저녁이었어요. 시를 읽으면서 “5·18이 전두환을 닮아갈지 꿈에도 몰랐다”는 대목에 가슴이 서늘해지더라고요. “역사 문제를 법으로 다스리려고 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핵심인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지적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고 봅니다. 이후 <경향신문>(12월14일치 8면)과 <중앙일보>(12월21일치 12면)에서 이른바 ‘5·18 왜곡처벌법’을 비판하는 기사 등이 잇따랐어요.한국판 홀로코스트 부정 처벌법’의 필요성(<한겨레> 2019년 2월12일치 1면)을 제기했던 터라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1980년 5월 광주 무등중학교 3학년 김원봉군의 어머니가 아들의 관 앞에서 오열하고 있다. 5·18기념재단 제공
1980년 5월 광주 무등중학교 3학년 김원봉군의 어머니가 아들의 관 앞에서 오열하고 있다. 5·18기념재단 제공

안녕하세요. 전국부 기자 정대하입니다. 고교 1학년 때 5·18 참상을 목도한 뒤 오랫동안 전두환씨와 5·18 기사를 통해 간접적 ‘인연’을 이어오고 있네요. 저는 이른바 ‘5·18 왜곡처벌법’의 가장 큰 원인 제공자는 전씨라고 생각합니다. 2017년 <전두환 회고록>에 5·18이 ‘북한군 특수부대 600명이 침투해서 일으킨 폭동’이라는 허위사실이 포함되면서 ‘법적 제재’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했어요. 2019년 2월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들이 수구 논객 지만원씨를 국회로 초청해 5·18 토론회를 연 것은 기폭제가 됐지요.

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한 ‘5·18 허위사실(유포) 처벌법’은 지난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어요. 이 법률은 1995년 제정된 ‘5·18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에 ‘5·18 허위사실 유포 처벌 조항’ 하나를 추가한 것입니다. 문제는 일부 언론에서 첫 발의안을 근거로 실제 통과된 개정법률 전체를 비판한다는 점입니다. ‘부인·왜곡·날조·비방’ 행위는 입법 과정에서 반대 의견을 수용해 빠지고 ‘허위사실 유포’만 처벌하도록 했는데도 “5·18을 부정하거나 부인하면 처벌되는 법”으로 보도됐어요. 또 예술·학문·연구·보도 차원에 대해서도 처벌할 수 없도록 했습니다. 5·18을 폭동이라고 주장해도 그것은 의견·평가여서 처벌 대상이 아니에요. 다만 북한군 개입설 등, 법원 판결을 비롯해 공공기관에서 진실이 아닌 것으로 분명히 밝혀진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행위는 처벌받도록 한 것이지요. 악의적 5·18 왜곡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법적 수단이라는 게 더불어민주당 쪽 설명입니다.

<한겨레> 자료 이미지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이번 논란의 본질은 “역사 기억을 부인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법 제정”의 정당성 여부겠지요. 한 진보적 인권활동가는 “미국처럼 표현의 자유를 절대적으로 보장하고, 명예를 훼손하면 소송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손해배상액을 많이 물게 하는 게 더 타당하다”고 하더군요. 역사 부정 행위를 ‘시민의 힘’으로 극복하자는 말이 솔깃하게 들리더군요. 하지만 형식상으론 논리적인 이 제안엔 5월 트라우마로 지금도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공감과 연대의식이 빠져 있다고 느꼈습니다.

‘염장을 지른다’는 말 아시지요? “사람 열 받게 한다”는 뜻이잖아요. 5·18 시민군 염동유(63)씨의 화를 북돋는 것은 ‘북한군 개입설’이에요. 1980년 5월 계엄군 진압작전이 시작되던 날, 옛 전남도청에서 군 영창으로 끌려간 그는 지금도 극심한 고문 후유증에 시달립니다. 다리를 절단하다시피 해 미세한 신경을 다시 잇는 큰 수술 등 다리 수술만 11차례나 받은 그는 마약성 진통제로 버티고 살아갑니다. “우리를 간첩이라고 하면 쓰겄어요? 그냥 죽으라는 소리밖에 더 되겠냐고?”라며 허탈해하는 그의 표정에 정말 마음이 아팠습니다.

옛 전남도청 2007년 겨울 전경. 김향득 사진가 제공
옛 전남도청 2007년 겨울 전경. 김향득 사진가 제공

5·18 왜곡 발언은 염씨 같은 생존자들과 유족들의 아픈 기억에 또다시 상처를 주는 ‘2차 가해’입니다. 그런데도 5·18과 특정 지역을 차별하는 ‘혐오 표현’이 표현의 자유가 허용하는 한도를 넘었는지를 따지지 않고, 5·18 허위사실 처벌법을 ‘저격’만 하는 것엔 거부감이 듭니다. 다만, 앞으로 차별금지법에 5·18 왜곡·폄훼 문제를 넣어 다른 종류의 차별·혐오와 포괄적으로 다룰 필요가 있다는 주장엔 찬성합니다. 5·18과 ‘표현의 자유’의 연관성을 노래한 한종근의 시로 글을 맺습니다. “5·18 유공자의 가산점 때문에 피해를 본다는 아우야/ 그 거짓말이 돌아다닐 수 있는 표현의 자유가/ 어떻게 피어났는지 생각해 보았느냐/ (…) / 태극기 부대마저 누리고 있는 이 자유는/ (…) / 그해 오월/ 광주시민의 붉디붉은 피를 먹고 자란 것이다”

정대하 전국부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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