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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정권 들어설 때마다 ‘4·3 흔들기’…“특별법 개정해야”

등록 2023-04-03 05:00수정 2023-04-03 12:29

[제주4·3 그 뒤, 75년]
제주시, 정당 허위 사실 유포 펼침막 철거
4·3 학살 주범 ‘서청’ 이름 달고 집회 신고도
제주4·3 75주년을 맞는 가운데 정당의 이름으로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펼치막이 내걸리자 이에 대한 대응으로 이를 비판하는 펼침막이 내걸렸다. 허호준 기자
제주4·3 75주년을 맞는 가운데 정당의 이름으로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펼치막이 내걸리자 이에 대한 대응으로 이를 비판하는 펼침막이 내걸렸다. 허호준 기자

지난 21일 제주도 곳곳에는 ‘제주4·3사건은 대한민국 건국을 반대해 김일성과 남로당이 일으킨 공산폭동이다’라는 펼침막이 우리공화당 등 4개 정당과 자유논객연합 등 1개 단체의 명의로 내걸렸다. 게시 기간은 오는 4일까지다. 대통령의 잇따른 사과와 국가 보상금이 지급되는 시기에 4·3을 헐뜯는 펼침막이 버젓이 도심지 곳곳에 내걸린 것이다.

4·3유족들은 물론 제주도민들까지도 이런 펼침막이 내걸린 것을 두고 행정기관에 항의했지만, 현행법상 정당의 펼침막을 강제로 철거할 수 있는 규정은 없다. ‘서북청년단 구국결사대’라는 이름을 내건 단체가 4월3일 제주4·3평화공원 부근에서 시위를 벌이겠다고 밝힌 것에 대해서도 4·3유족들은 분노한다. 4·3 관련 단체들은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대응집회를 열기로 했다.

4·3 폄훼의 물꼬를 튼 것은 정치권이다. 지난 2월13일 제주에서 열린 국민의힘 당대표 및 최고위원 후보 합동연설회에서 태영호 최고위원 후보가 “4·3은 명백히 김일성 일가에 의해 자행된 만행”이라고 주장하면서 ‘4·3 흔들기’가 시작됐다. 그러나 2003년 정부가 펴낸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에는 북한이나 남로당 중앙당의 지령설은 근거가 없는 것으로 규정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도 4·3을 헐뜯는 세력들이 나타나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등 4·3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운동에 재를 뿌리기도 했다. 이후 명예회복이 가시화되면서 4·3 폄훼는 수그러드는 듯하다가 정권이 바뀐 뒤 다시 나타났다.

맞불 펼침막도 곳곳에 내걸렸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김한규·송재호· 위성곤 의원은 “4·3 영령이여, 저들을 용서치 마소서. 진실을 왜곡하는 낡은 색깔론, 그 입 다물라”는 문구를 담은 펼침막을 내걸었다.

현행법상 통상적인 정당 활동으로 보장되는 경우 펼침막을 철거할 수 없다. 제주도가 행정안전부 지침에 따라 해당 펼침막 내용에 대해 제주도 선거관리위원회에 질의를 요청한 결과 ‘통상적인 정당 활동’이라는 답변을 받았다.

그러나 4·3유족회와 4·3평화재단, 4·3연구소 등 관련 단체들이 성명과 기자회견 등을 통해 4·3 헐뜯기 중단을 촉구하는 등 반발이 커지자, 강병삼 제주시장은 30일 “법률적으로 검토한 결과 ‘해당 현수막 내용은 국가가 정한 제주4·3특별법의 정의에 반하는 허위사실이어서 정당 정책이나 정치적 현안이라고 할 수 없다’는 판단이 나왔다”며 철거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제주4·3특별법에 희생자의 명예 훼손에 대한 처벌 규정이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강호진 제주4·3기념사업위 집행위원장은 “4·3 당시 대량학살과 패륜적 행위를 한 당사자인 서청의 후예임을 자처하는 것이 4·3 75주년을 맞는 시점에서 벌어지고 있다. 법적 수단을 동원해 막아야 한다”고 했다. 허영선 제주4·3연구소장도 “정부의 진상조사보고서와 대통령의 사과, 검찰과 법원의 4·3 수형인들에 대한 재심 재판에서 무죄 요청과 무죄 선고가 이뤄지는 시기에 과거의 4·3 헐뜯기가 일어나는 데 분노한다. 제도적으로 이를 막을 수 있는 4·3특별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송재호 의원은 “최근에 색깔론, 역사 왜곡 등으로 진실을 부정하고 희생자와 유족의 명예에 먹칠을 하면서 사익을 얻으려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 4·3 진상조사 결과를 부인하거나 희생자와 유족, 관련 단체의 명예를 훼손할 경우 처벌할 수 있도록 해 희생자와 유족의 권익을 보호해야 한다”며 4·3특별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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