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열린 ‘일본 핵오염수 해양투기 저지를 위한 제주범도민대회’에 참가한 제주해녀들. 허호준 기자
“바당이 우리 밭이고 재산아니우꽈. 밭이 오염되고 재산을 잃는다는데 가만히 이시민 되쿠과. 오늘 물질허는 날이주만 일부러 와수다.”
13일 오후 ‘일본 핵오염수 해양투기 저지를 위한 제주범도민대회’(제주범도민대회)가 열린 제주시 노형오거리에서 만난 서귀포시 대평리 해녀 오연수(68)씨는 이렇게 말했다. 16살 때부터 물질을 한 오씨는 몇번이나 “바다가 재산”이라며 “아이들을 공부시키고 큰일을 돌보고 먹고 살아왔는데 이렇게 방류하면 우리는 무엇을 하고 살아가느냐”고 분노했다.
제주범도민대회는 제주도내 농어민단체 등 52개 단체로 구성된 ‘일본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투기 및 시피티피피(CPTPP) 저지 제주범도민운동본부’(제주범도민운동본부) 주최로 열렸다. 제주도내 농어민과 해녀 등 1천여명이 참가했다.
‘저지! 핵오염수 해양투기’라는 글귀가 써진 종이를 든 해녀 양정렬(74)씨는 “물질이 평생 직업”이라고 말했다. “며칠 바당이 세당 오늘은 바당이 고라신디 여기 와수다.(바다가 거칠다가 오늘은 바다가 잠잠해졌지만 여기 왔어요) 물질허래 나가민 20만~30만원은 벌지만 그걸 내불어동 여기 온 거우다. 백성들이 편안해야 정치인이나 대통령도 편안할 텐데 백성들이 편안하지 않은데 어떵헐거우꽈.”
이날 제주범도민대회에는 대정과 안덕, 애월지역의 해녀들이 많았다. 일부 해녀들은 테왁(물질 도구)을 갖고 집회장을 찾았다. 그만큼 해녀들은 초읽기에 들어간 일본 원전 오염수 방류를 생계와 연결된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안덕면 사계리에서 온 해녀 천영자(69)씨는 “영국 교수가 1ℓ를 마실 수 있다고 하던데 그 물을 우리신디 멕이지 말고 영국시민신디 다 멕이민 될 거 아니우꽈”라고 반문했다. 천씨가 “너울성 파도가 칠 때는 바닷물을 괄락괄락 먹는다”라고 말하자, 옆에 있던 해녀 김인선(65)씨는 “코로 물이 들어가면 입으로 나온다. 텔레비전 뉴스에서 총리가 오염수 발언을 할 때는 총리 입만 바라봤다. 숨 참는 이이 얼마나 험한 일이지 아느냐”고 했다. 강미화(65)씨도 “바닷속에서 숨을 참다가 올라와서 ‘호이’하면서 숨을 내뱉을 때는 물이 그냥 들어온다. 하루에도 여러 차례 바닷물을 먹게 된다”며 “오늘 성게 채취하는 날이지만 일부러 포기하고 왔다”고 말했다.
제주시 애월읍 귀일리에서 온 해녀 양화선(70)씨도 “원전 오염수를 먹어도 괜찮다면 그 물을 마시면 되지 왜 생수를 사 먹겠느냐. 제사가 돌아와도 물질을 해야 먹고 살았는데 오염수를 방류하면 어떻게 될지 끔찍하다”고 우려했다. 10여년 전 일본 미에현으로 물질을 갔다 왔다는 양씨의 동료 해녀(75)는 “우리야 몇 년 살지 않겠지만, 우리 아이들이 큰일”이라고 걱정했다.
13일 제주시에서 열린 ‘일본 핵오염수 해양투기 저지를 위한 제주범도민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서귀포시 성산포항에서 농어민들이 모여 출정식을 갖고 있다. 허호준 기자
이날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제주도내 농어민들은 서귀포시 성산포항과 안덕면 안덕계곡에서 트럭과 버스를 이용해 대회장을 찾았다. 서귀포시 성산포항에서 만난 정태문(72)씨는 “1만여평의 농지에 더덕 농사를 짓고 있다”며 “오염수가 방류되면 가장 먼저 해녀가 없어지고, 이어서 어선이 없어지고, 그다음은 수협이 금고로 전환되지 말란 법이 있느냐. 바다가 없어지는 건 식량 안보 위기”라고 비난했다.
농어민들은 대형 트랙터와 트럭 50여대에 일일이 ‘사수! 제주농·어업’ ‘저지! 핵오염수 투기’ 깃발을 꽂았다. 이곳에서 만난 감귤농사를 짓는 강동원(52·수산리)씨는 “제주도 자체가 심각한 상황에 부닥쳤다.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전농 제주도연맹 김만호 부의장은 “원전 방류가 기정사실로 됐지만,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일본이 자국의 경제적 이익만을 위해 세계를 재앙에 휩싸이게 할 것이다. 핵오염수 해양투기는 인류에 대한 테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13일 제주시에서 열린 ‘일본 핵오염수 해양투기 저지를 위한 제주범도민대회’에 참가하는 트럭들. 허호준 기자
제주범도민운동본부는 이날 결의문을 통해 “일본 내부에서조차 신뢰를 받지 못하는 후쿠시마 핵오염수 안전성이 타국에서 신뢰받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은 전 세계적 상황과 달리 신뢰를 보내는 기이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이어 “후쿠시마 핵오염수의 안전성에 대한 증명 책임은 일본 정부에 있다. 안전하고 믿을 수 있다면 자국 내에서 처리하면 될 일이지 먼바다로 흘려보내려 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며 “일본 내 시민사회단체와 농어민단체가 이에 반발하며 시위를 이어가고 있는 것 자체가 위험성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일본 정부의 오염수 해양투기 포기와 자국 내 보관 △윤석열 정부는 해양투기를 반대하고 국제해양법재판소에 제소할 것 △오영훈 도정은 민관협력을 통해 해양투기 반대 행동에 적극 나설 것 등을 촉구했다.
허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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