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낮 대구 중구 동인동4가에 있는 한 식당 출입문에 코로나19로 휴업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김일우 기자 cooly@hani.co.kr
코로나19 여파가 장기화되면서 소상공인들이 벼랑에 내몰리고 있다. 정부는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지역 신용보증재단의 특례보증과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소상공인 경영안정자금을 확대했지만, ‘대출’ 중심 지원인 탓에 이자·보증료 부담도 져야 하고 문턱도 높아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또 신청자가 몰려 실제 지원까지 최대 두달이 걸리는 병목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경기도의 한 백화점 의류매장 매니저로 일하는 ㄱ(43)씨는 최근 경기도신용보증센터에서 소상공인 긴급경영안정자금 대출을 상담한 뒤 좌절했다. ㄱ씨는 까다로운 대출 조건에 헛웃음만 지었다. 백화점 매니저는 본사와 위탁계약을 맺은 중간관리자 형태의 개인사업자로, 매출 수익의 일부를 배분받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ㄱ씨는 “신용등급 6등급 이상, 다른 대출이 없어야 한다는 등의 조건이 있는데, 주택담보대출이 있어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며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백화점 내 입점한 브랜드에서 백화점 쪽에 내는 수수료가 전체 매출의 30~40%에 육박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ㄱ씨는 “매출의 0.2~0.3%를 가져가는데 하루에 옷 1장 팔기도 어렵다. 현금서비스 받아가며 버티고 있는데, 정부의 긴급경영안정자금은 먼 나라 얘기”라고 토로했다.
대구 중구 종로1가에서 큰 술집을 운영하는 김시연(52)씨도 최근 지역 신용보증재단 특례보증을 알아봤다가 포기했다. 지난달 29일 신청한 다른 상인이 보름이 지나 상담을 받으러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김씨의 가게는 한달에만 임대료와 전기료 등 1천만원이 그냥 나간다. 9일 매출액은 6만원, 10일 매출액은 0원이었다. 김씨는 “대출이 아니라 소상공인에게 직접적이고 신속한 지원이 절실한데 이걸 자꾸 포퓰리즘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어 답답하다”고 말했다.
11일 낮 대구 중구 동인동4가에 있는 한 식당 출입문에 코로나19로 휴업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김일우 기자 cooly@hani.co.kr
그나마 초기에 신청한 경우는 지급이 이뤄지기도 했다. 서울 남대문시장 상인 정아무개(50)씨는 지난달 중순 서울신용보증재단에 ‘코로나19 피해 소상공인 특례보증’을 신청해 3천만원(연이율 1.5%)을 17일 만인 이달 초에 빌렸다. 정씨는 “나는 다행인데 늦게 빌린 상인들은 대출 심사가 길어지고 있다”고 했다.
당장 나갈 돈이 있는 영세상인들은 개인간 채무 등 다른 방법을 찾고 있다. 대구 중구 동인동4가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한 상인은 “신용보증재단이 하는 코로나19 특례보증은 시간도 오래 걸린다고 해서 신청도 안 했다”며 “이제 더 버티기가 어려워서 돈 구할 다른 방법을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20평이 좀 안 돼 보이는 가게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찾아오는 손님도 없었다.
이처럼 특례보증의 대출이 늦어지는 건 신청자가 몰리며 보증서 발급이 지체되고 있기 때문이다. 소상공인 등이 지원 신청을 하면 지역 신용보증재단이 서류 심사, 현장 실사 등을 거쳐 피해 정도를 심사한 뒤 지원 한도 등을 정한다.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한 대구의 경우, 지난달 20일부터 신청을 받기 시작해 1657명이 은행에서 1인당 3천만원씩 451억원을 빌렸다. 하지만 보증지원을 신청한 4298명은 아직 보증서를 받지 못해 은행에서 돈을 빌리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20일부터 20여일 동안 기다리고 있는 소상공인들도 적지 않다. 신청에서 지급까지 3주일이 걸리기 때문이다.
‘병목현상’을 해소하고자 자치단체들은 담당 인력 확충 등을 통해 소요기간 단축에 나서는 것과 더불어 비교적 신청 절차가 간소한 소상공인 육성 자금 등의 우회로를 안내하고 있다. 노경완 대구시 금융지원팀장은 “이달 하순부터 심사 인력을 대폭 보강하고 현장 심사도 생략하는 등의 방법으로 3주를 2주일로 당기고, 4월부터는 다시 1주일로 단축할 예정”이라고 했다. 충남도는 보증서의 신속한 발급을 위해 단기 계약직 채용 공고를 내기도 했다. 충북도는 23일부터 소상공인 등을 대상으로 육성자금(연간 700억원)을 풀 계획이다. 충북도 관계자는 “정부 자금에 견줘 절차가 간소하고 별도 이자 지원(2%) 혜택도 있어 정부 특별자금을 상담하다가 지자체 자금 쪽으로 유턴하는 소상공인도 늘고 있다”고 했다.
김일우 구대선 오윤주 송인걸 이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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