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새벽 최인호 부산 사하구갑 당선자가 당선이 확정되자 선거사무실에서 가족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최인호 후보 선거사무실 제공
“더 낮은 자세로, 더 겸손하게, 더 열심히 뛰겠습니다.”
15일 치러진 21대 총선에서 개표 막판 뒤집기를 통해 재선에 성공한 최인호(53·더불어민주당) 부산 사하구갑 선거구 당선자는 손에 땀을 쥐는 접전 끝에 당선이 확정되자 “국정 견제론이 태풍처럼 몰아쳤는데도 저를 살려주신 사하구민들께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감사하다. 큰절을 올린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사하 발전과 대화와 타협의 정치로 반드시 보답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방송3사 출구조사에서 김척수(57) 미래통합당 후보를 1%포인트 차이로 앞섰다. 이어 개표 초반부터 김 후보를 앞서 나갔다. 자정을 넘겨 개표율이 57.7%에 이르렀을 때는 4.8%포인트까지 앞섰다. 무난한 승리가 예상됐다. 새벽 1시께 반전이 일어났다. 최 당선자가 지난 4년 동안 공을 들였던 괴정동에서 김 후보의 표가 더 많이 나오면서 역전을 허용한 것. 김 후보가 1천여표까지 앞서 나가며 패색이 짙었다. 역대 선거에서 부산은 개표 후반으로 갈수록 미래통합당 계열 정당 후보의 표가 더 많이 나왔다.
하지만 마지막 사전투표함 개표 때 대역전극이 일어났다. 새벽 4시께 마지막 뚜껑을 열었는데 1900여표가 더 쏟아졌다. 결국 그는 0.9%포인트(697표) 차이로 이겼다. “지난 4년 동안 의정활동을 통해 추진하고 있는 3조원 규모의 20개 사업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호소가 유권자들의 마음에 가닿은 것이라고 선거 캠프는 보고 있다.
최인호 부산 사하구갑 당선자가 괴정골목시장 앞에서 유세하고 있다. 김광수 기자
낙동강 하구에 자리한 사하구는 미래통합당의 텃밭인 부산경남에서 2000년대부터 민주당 계열 정당 후보가 나름 선전한 ‘낙동강 벨트’ 가운데 하나다. 사하구의 지역구 2석 가운데 사하구을에선 4년 전 미래통합당의 뿌리정당인 새누리당으로 당적을 옮긴 조경태 의원이 2004년 열린우리당 간판을 달고 처음 당선된 것을 시작으로 세차례 연속 당선됐다. 4년 전엔 최 당선자가 사하갑에서 민주당으로 당선됐다. 당시 그는 부산 역대 선거에서 30여년째 이어지고 있던 특정정당의 쏠림 현상을 바로잡는 희망을 이어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부산 동인고를 졸업한 최 당선자는 1985년 부산대 정치외교학 입학 뒤 서슬퍼런 군사정권에 맞서 싸웠고, 1989년 부산대 총학생회장 시절엔 학원 민주화를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했다. 부산울산총학생회협의회 의장을 맡아 민주화 운동을 하다 구속되기도 했다. 이후 2000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역구도를 깨겠다며 재선이 유력하던 서울 종로구 대신 부산 북구강서구을을 선택했을 때 함께 했고, 참여정부 시절 언론비서관을 지냈다.
2002년엔 새천년민주당 간판을 달고 부산 해운대구기장군갑 국회의원 재선거에 출마했으나 20% 득표율로 한나라당 후보로 나섰던 서병수 전 부산시장에게 패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소속으로 다시 도전에 나서 방송사 출구조사 발표에서는 이겼지만, 개표 결과 서 전 부산시장에게 역전패했다. 절치부심하던 그는 2012년 19대 총선에서 낙동강 벨트인 사하구갑으로 지역구를 옮겨 다시 도전에 나섰지만 문대성 새누리당 후보에게 2380표(3.53%포인트) 차이로 석패했다.
20대 총선에서야 4수 끝에 김척수 새누리당 후보를 2730표(3.95%포인트) 차이로 누르고 당선된 최 당선자는 이번에도 극적으로 승리를 거머쥐며, 부산 586세대의 대표 주자로 부상하게 됐다.
부산/김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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