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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김덕영 “사회학자, 베버처럼 스스로 작은 체계 이뤄야”

등록 2021-07-23 08:59수정 2021-07-23 14:29

‘막스 베버 선집’ 출간한 사회학자 김덕영 인터뷰
“베버라는 지적 체계, 장기적·체계적으로 수용해야”
20여년 동안 ‘A4×10 공장’인 제도권 학계와 거리
앞으로 한국 근대성 밝힐 ‘3부작 국가 연구’ 계획도
김덕영 독일 카셀대 교수가 16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최근 펴낸 막스 베버 선집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김덕영 독일 카셀대 교수가 16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최근 펴낸 막스 베버 선집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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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베버 지음, 김덕영 옮김/길·4만5000원, 3만원

‘사회학자 김덕영’은 한국 학계에서 하나의 상징과 같은 이름이 됐다. 무엇의 상징인지는 ‘김덕영’을 제목에까지 언급한 주요 일간지 칼럼을 보면 확인할 수 있다. 박구용 전남대 교수(철학)는 2013년 “사회학에서 두 개의 큰 산맥을 이루고 있는 베버와 지멜 연구자라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논문으로 독일에서 박사 학위만이 아니라 교수 자격까지 취득한 학자를 이 나라 대학들은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다”고 썼다. 7년이 흐른 지난해, 최종렬 계명대 교수(사회학)는 “이제 학문의 장에서 남은 유일한 희망은 대학 밖의 김덕영”이라고 썼다. 학문 그 자체보다 실적을 쌓는 데 필요한 ‘에이(A)4 용지 10장짜리 논문’만이 넘쳐흐르는 ‘제도권’ 학계의 현실이, 이에 따르지 않아 ‘이방인’ 취급을 받는 한 학자를 상징적인 지위로까지 밀어올린 셈이다.

최근 ‘막스 베버 선집’(선집) 가운데 첫 두 권을 펴낸 김덕영(63) 독일 카셀대 교수를 지난 16일 한겨레신문사 사옥에서 만났다. 근대를 읽기 위한 통합과학을 모색했던 막스 베버(1864~1920)는 다양한 영역에서 수많은 글들을 써냈지만 생전에 책으로 나온 건 2~3권뿐이다. 독일에서는 1984년부터 논문과 강연 등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베버의 원고들을 ‘막스 베버 전집’(2020년 총 54권으로 완간)으로 출간해왔는데, 선집은 이 가운데 김덕영이 베버 학문의 핵심을 전달할 수 있는 저술들만 추리고 번역해 10권의 한국어판 시리즈로 펴내는 작업이다.

김덕영은 “큰 짐을 덜어낸 기분”이라고 했다. 베버의 사회과학 방법론을 소개하는 것을 큰 숙제로 여겨왔는데, 이번 선집 2권이 바로 여기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베버의 방법론 논문 6편에는 무려 149명의 이름이 언급되는데, 이는 베버가 당시까지의 인식론, 방법론, 논리학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면서 “버릴 건 버리고 취할 건 취한” 작업이 얼마나 방대했는지 보여준다. 김덕영은 상세한 해제에서, 베버가 “개념은 경험적으로 주어진 것을 정신적으로 지배할 목적으로 사용하는 사유적 수단”이라 보는 칸트의 구성론적 인식론에 근거를 두고, ‘창조적 절충주의’에 따라 복합적이고 다면적인 자신만의 방법론을 발전시켰다고 풀이했다. 선집 작업은 앞으로 <이해사회학>, <직업으로서의 과학/직업으로서의 정치>, <음악사회학>, <사회경제사>, <종교사회학> 3권, <정치사회학> 등으로 이어질 계획이다. 김덕영은 “<종교사회학> 3권의 경우 앞으로 5년 정도 걸릴 큰 작업”이라고 말했다.
김덕영 카셀대 교수가 그동안 펴낸 사회학 저작 및 번역서들. 그는 20여년 동안 30여종의 책을 펴냈다. 길 제공
김덕영 카셀대 교수가 그동안 펴낸 사회학 저작 및 번역서들. 그는 20여년 동안 30여종의 책을 펴냈다. 길 제공

이번 선집 작업의 의미에 대해, 김덕영은 무엇보다 “한 학자의 거대한 지적 체계를 나름의 관점을 가지고 체계적이고 장기적으로 수용하고 해석하는 데 있다”고 스스로 평가했다. 일부만을 조각내어 중구난방식으로 소개하거나 분석하는 것은 의미가 없으며, 종합적인 관점으로 조망하고 장기적이고 체계적으로 접근해야 한국 사회에 학문으로 뿌리를 내리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한 사람’이 오롯하게 맡는다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그래야만 “비로소 아주 작은 ‘한국적인’ 체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스스로 번역자라는 정체성은 없다”면서도 그가 꾸준히 베버와 지멜 번역에 몰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누구든 접근할 수 있게 중요 테스트들이 한글화되어 있지 않으면, ‘지식의 종속’에서 벗어날 한국에서의 지식 체계 형성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는 ‘번역과 저술의 조화로운 병행’을 추구하는데, “한국 사회가 그것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소스타인 베블런은 뛰어난 저작들을 많이 남긴 학자인데, 한국에선 그저 <유한계급론> 번역만 넘쳐납니다. 베버와 관련한 대학 강의 태반은 ‘관료제’ 얘기고요. 유명한 <직업으로서의 정치>도, 직업을 근대 사회의 가장 중요한 문화적 지표라고 봤던 베버의 관점과 연결짓지 못하면 그 핵심을 잡아낼 수 없습니다. ‘체계를 이루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사회학자 한 사람은 스스로 하나의 작은 체계가 되어야 합니다.”

김덕영이 번역과 저술로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활동한 지 20여년이 흘렀지만, 국내 대학과 이른바 ‘제도권’ 학계에서 그는 여전히 껄끄러운 존재다. 언젠가 어느 대학이 한국연구재단 지원을 받아 진행하는 프로젝트에서 김덕영을 참여시키자는 제안이 나왔는데, 연구단 내부에서 “사회학과를 하나 더 만들 일 있냐”며 거부했던 일이 있다고 한다. 김덕영은 대학 밖 공부공동체인 ‘사회이론강좌: 나비’에서 이론사회학 강의를 하는데, 일부 교수들이 제자들이 여기에 나가지 못하도록 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한국연구재단 지원사업에 참여해보라”는 권유를 받기도 했는데, 학문적 결과물이 아니라 행정적 관리를 우선으로 삼는 시스템에 질려 지원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권력과 자본에 의해 관리되는 ‘에이4×10 공장’에서 이론은 배제될 수밖에 없다. 그래도 대학 밖에는 이론에 대한 갈급과 성실한 독자들이 있다”고 말했다.
막스 베버는 1864년 독일 에르푸르트에서 태어나 하이델베르크·슈트라스부르크·베를린·괴팅겐 대학에서 법학·경제학·역사학·철학 등을 공부했다. 베를린대에서 법학박사 학위와 하빌리타치온을 취득했다. 통합과학적 인식에 기반한 광범위한 연구로 현대 사회학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학자로 평가받는다. 그의 지적 유산은 2020년 독일에서 완간된 ‘막스 베버 전집’(총 54권)으로 종합됐다. &lt;한겨레&gt; 자료사진
막스 베버는 1864년 독일 에르푸르트에서 태어나 하이델베르크·슈트라스부르크·베를린·괴팅겐 대학에서 법학·경제학·역사학·철학 등을 공부했다. 베를린대에서 법학박사 학위와 하빌리타치온을 취득했다. 통합과학적 인식에 기반한 광범위한 연구로 현대 사회학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학자로 평가받는다. 그의 지적 유산은 2020년 독일에서 완간된 ‘막스 베버 전집’(총 54권)으로 종합됐다. <한겨레> 자료사진

그렇다고 김덕영을 경험 연구는 배제하고 이론에만 매달리는 학자로 오해해선 안 된다. “이론이 없는 경험은 맹목적이고 경험 없는 이론은 공허하다”는 것이 베버의 영향을 받은 그의 주된 명제이며, <환원근대>(2014) 등 나름의 ‘한국적 사회학’을 구축하는 것은 그의 숙원 가운데 하나다. 그는 “경험적·역사적 방법을 통해 한국 사회를 결정적으로 각인한 ‘국가’에 대한 3부작 연구를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가 볼 때, 전근대 사회부터 개인과 집단을 구석구석 지배·통제하고 근대화 자체도 왜곡시킨 국가의 존재는 동양과 서양을 구별해주는 가장 큰 특징이다. 일제(총독국가)가 남긴 토대에 미군정(군정국가)이 미국의 정신과 문화라는 상부구조를 심어 ‘이중적 식민지’가 형성됐는데, 그걸 극복하지 않고 다시 경제 중심의 근대화를 추진하면서 오늘날 서구와 다른 근대성을 지닌 한국 사회로 이어졌다는 관점이다. 그는 “이론을 공부하다보니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 핵심 열쇠는 국가라는 생각이 들게 됐다. ‘환원근대’라는 총론에서 이어져나오는 각론이며, 루만이 말하는 ‘기능적 분화’ 없이 ‘내가 맞고 네가 틀리고’ 식의 규범주의적·도덕주의적 논쟁만 남은 한국 사회의 자아비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덕영은 스스로를 “‘불성실하지 않았다’ 정도의 이야기를 들을 만한 평범한 사회학자”로 규정했다. 다만 “‘한국에서 이론적 체계를 세우려고 노력했던 사람’이라는 평가는 들을 수 있지 않을까? 그 정도의 평가를 바라 본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펴낸 저술과 번역이 30여종에 이르는데, 그는 “이제 절반 정도 온 것 같다. 존경하는 루만이 60권의 책을 썼는데, 나도 60권을 써내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고 했다. 어떤 패러다임을 형성해 ‘거장’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많이 썼다”는 것으로, “두께가 되어야 이를 수 있는 경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베버와 지멜 저작 번역, 이론사회학을 소개하는 ‘사회학 이론’ 시리즈, ‘국가 연구’ 3부작을 포함한 한국 근대성 연구 등 세 가지를 앞으로 작업의 큰 방향으로 제시했다. “어느덧 예순을 넘겨 친구들은 이제 다 퇴직했던데… 갈수록 시간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네요.”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김덕영 독일 카셀대 교수가 16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최근 펴낸 막스 베버 선집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김덕영 독일 카셀대 교수가 16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최근 펴낸 막스 베버 선집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김덕영

1958년생.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뒤 독일 괴팅겐대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게오르크 지멜과 막스 베버에 대한 비교 연구로 독일 카셀대에서 독일의 대학교수 자격인 하빌리타치온을 취득했다. 한 해 석 달 동안 카셀대에서 강의하며, 그 밖의 시간에는 저술과 번역에 전념하고 있다.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2010), <돈의 철학>(2013), <렘브란트>(2016) 등 주로 베버와 지멜의 주요 저작들을 우리말로 옮기는 것을 번역 작업의 축으로, <게오르그 짐멜의 모더니티 풍경 11가지>(2007), <막스 베버: 통합과학적 인식의 패러다임을 찾아서>(2012), <에밀 뒤르케임: 사회실재론>(2019) 등 이론사회학을 벼리는 것을 저술 작업의 축으로 삼는다. <환원근대: 한국 근대화와 근대성의 사회학적 보편사를 위하여>(2014), <사회의 사회학>(2016), <에리식톤 콤플렉스: 한국 자본주의의 정신>(2019) 등 한국 사회를 분석하기 위한 ‘한국적 사회학’을 모색하는 것은 저술 작업의 또다른 한 축이다. 이른바 ‘제도권’ 학계와는 별다른 접점 없이, 독립적 공부공동체인 ‘사회이론강좌: 나비’에서 공부하고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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