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Book]
이제는 없는 듯이 있는 조용한 바다가 좋더라. 거센 파도가 밀려왔다가 거품처럼 슬며시 숨죽이는 곳. 월송정 지나 손등이 거뭇한 할머니가 제철 방어회를 떠 주는 횟집이 있는 곳. 여기에서 독도가 제일 가깝다고 하더라. 그러나 오늘은 돛배도 없고 그곳으로 부는 바람도 없어라. 젊은 시인들끼리 어울려 사진을 찍게 하고 우리는 그냥 볕살 좋은 모래밭이나 거닐며 보릿고개 넘던 서러운 시절을 이야기하고 싶더라. 땅 한 평 없어 식구들끼리 나와 바닷고기를 후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후포. 이제는 겨우 발밑이나 적시다가 고개 숙이며 물러날 줄 아는 겨울 바다가 나는 좋더라.
- 이시영 시집 <나비가 돌아왔다>(문학과지성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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