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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가성비의 시대, 소설은 어디로 가는가

등록 2022-03-25 04:59수정 2022-03-25 10:19

[한겨레BOOK] 박현주의 장르문학읽기

코스트 베니핏
조영주 외 4인 지음 l 해냄(2022)

<코스트 베니핏>은 전자책으로 샀다. 하지만 결제한 순간, 아차 싶었다. 10% 할인 쿠폰이 있었다니! 쿠폰을 적용하려면 구매한 책을 다운로드하기 전에 결제를 취소하여 환불받고 재결제해야 한다. 고작 10% 할인에 연연하여 환불까지 한다는 건 귀찮기도 하고, 마음도 불편하다. 하지만 몸과 마음, 지갑이 다 어려운 시대다. 독자로서 자존심과 천원의 이익, 불가피하게 선택해야 한다면 단연 후자이다.

이 작품집에 실린 다섯 편의 단편들은 가성비 논리가 생존 원칙이 된 시대를 그린다. 조영주의 ‘절친대행’은 외로운 건 싫지만 친구 관계를 유지하는 데 드는 노력을 피하고자 대행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김의경의 ‘두리안의 맛’은 공짜 타이 여행에 당첨된 파워블로거의 뒤를 따라간다. 이진의 ‘빈집 채우기’는 예비 신혼부부의 가성비 극대화 혼수 마련기로 포털의 결혼 게시판 같은 동시대성이 있는 작품이다. 주원규의 ‘2005년생이 온다’에서는 스무살에 조기 은퇴해야 인생 가성비가 맞는다고 주장하는 자유주의 고등학생이 나온다. 정명섭의 ‘그리고 행성에는 아무도 없었다’는 제목 그대로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의 에스에프(SF)식 패러디이다.

내용 면에서는 현대의 행위 결정 논리를 사유해보는 기회를 주는 작품들이었다. 가성비는 타협의 결과이다. 미디어에선 소비욕을 부추기지만, 자원은 한정적이다. 내게 잘 맞춰주는 친구, 어디에 내놔도 빠지지 않는 혼수, 남이 부러워할 여행, 이 욕망을 충족하려면 돈과 노력이 들지만, 모두 가질 수는 없기에 느끼는 체념의 자기합리화가 가성비이다.

이 깨달음을 갖고 보면 이 작품집은 문학도 가성비에 따라 소비되는 세태의 산물 같다. 수록된 다섯 편의 소설은 가성비라는 주제를 간략하게 치고 빠지는 사회 스케치에 가깝다. 다섯 명의 참여 작가가 참신한 설정이나 성실한 취재, 날카로운 시선으로 각자의 장르에서 성취를 이룬 작가들이기에 이 작품집을 읽은 후엔 아쉬움이 남는다.

이것이 소설 가성비의 역설일까. 한 작가가 일정 분량과 형태를 갖춘 작품을 쓰려면 가성비가 좋지 않은 시대다. 만오천원 정가의 책 한 권을 써서 초판 이천 부를 찍으면, 작가가 받는 인세는 삼백만원 남짓, 집필하는 데 327시간이 넘으면 2022년 최저임금도 되지 않는다. 빨리 쓰거나, 지원을 받거나, 아주 많이 팔거나 영상화 판권을 팔아야 소설가는 살아남는다.

독자의 입장도 마찬가지이다. 여가의 방식으로 책과 오티티(OTT) 한 달 구독료를 비교하면 책의 가성비가 현저히 떨어진다. 책 한 권이 넷플릭스 한 달 치, 그것도 네 명 몫의 즐거움과 의미를 줘야만 한다. 결국 출판사 입장에서도 제작 비용이 비슷하면, 여러 명의 중견 작가들에게 동시대적 소재를 주어 엮은 가벼운 앤솔로지를 내는 편이 효율적이라는 판단을 할 수도 있다.

세상에는 분명히 가성비로 측정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 이 책뿐 아니라 모든 문학은 그 가치를 말한다. 읽는 데 시간과 노력은 많이 들지 않지만 감동과 재미는 극대화하는 책 한 권을 사기 위해 적립금과 쿠폰을 꼼꼼히 살피는 알뜰한 독자가 된 나는 슬프게도 알아버렸다. 가성비를 따질수록 문학은 점점 가성비를 맞출 수 없다는 것을.

박현주 작가,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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