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탐정 사무소
이락 지음 l 안녕로빈(2023)
평소에 시심을 잊고 산대도 국어 수업을 들은 우리 모두 마음에 품은 시구 하나 정도는 있다. 밤하늘을 보면서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를 헨 적도 있으리라. 가을에 거리에 구르는 낙엽을 보면서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를 떠올리기도 했으리라. 내게도 그런 시구가 있다. 지금보다 어렸을 때는 “내 고통의 끝에 문이 있었다”로 시작하는 루이즈 글릭의 시를 좋아했다. 거기에 그 시절의 내 마음이 있었다.
‘시 탐정 사무소’는 전형적 사립 탐정 소설이지만, 사람들이 남긴 시가 그 사람을 대변해준다는 전제를 따라간다는 특징이 있다. 주인공인 설록은 책장 가득한 응접실에서 조수 성완승이 내린 커피를 마시며 의뢰인을 기다린다. 가출한 딸을 찾는 재벌 회장님, 열정을 잃은 아이돌 때문에 고민하는 기획사 사장, 사라진 셋째를 찾는 형제들, 좋아하는 여자아이에게 고백한 소년. 이런 소소한 미스터리에 더해 땅끝 바다에 빠진 취업 준비생, 저축은행 금고 절도 같은 사건성이 짙은 의뢰도 있다. 여기에는 모두 공통점이 있다. 시 한 편이 관련되어 있다는 것.
현직 국어 교사라는 작가의 이력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이 소설 속 추리는 문학 수업의 시 분석과 유사하다. 탐정은 사건 현장에 남겨진 시를 분석하여 사람의 마음을 짚어낸다. 강은교, 서정주, 기형도, 정진규, 문정희, 김기택, 나희덕, 김영랑, 윤동주의 시가 등장하며, 설록은 이를 분석해서 지나칠 정도로 정확하게 진실을 재구성해낸다.
셜록 홈스 ‘패스티시’(잘 알려진 작가나 작품의 양식이나 기법을 모방하는 것)라는 설정을 감안하더라도, 사건은 소소하고 플롯은 가볍고 추리는 다소 인위적이다. 이 정도면 탐정이라기보다 독심술사에 가깝다. 그렇대도 ‘시 탐정 사무소’는 추리소설로서 귀여운 점이 있다. 무엇보다 일상 추리소설이라는 장르를 한국 시라는 소재로 구현해냈다는 점이 고전적이면서 신선하다. 설록의 이런 분석 방법은 20세기 중반의 추리소설 ‘9마일은 너무 멀다’에 나온 언어 내적 맥락을 파고드는 화용론적 분석과 유사하다. 고전 추리소설의 구조를 한국 시와 결합한 국어 선생님의 취향이 느껴져서 나도 모르게 슬쩍 미소 짓게 된다. 최근 한국 추리소설이 다변화되면서 사회파적 스릴러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르가 많이 창작되는데, 이 소설 또한 그런 흐름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시 탐정 사무소’는 장마다 시 한 편을 천천히 읽어볼 기회를 준다는 큰 장점이 있다. 완승과 함께 시를 소리 내어 낭독하면서 시인의 의도, 그리고 시를 전한 이의 의도를 읽어본다. 사건의 전말은 파악할 수 없대도, 시가 남긴 여운은 마음에 남는다. 시가 추리소설이 될 수 있는 건 보통 시를 난해하다고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타인의 마음 읽기처럼. 그렇지만 입안에서 단어들을 굴려보면, 알 것 같은 감정이 있다. 시의 문장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잡히는 뜻이 있다. 낯선 언어를 해석하는 것이 결국 추리, 나아가 이해의 시작이다.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누구나 시 탐정 사무소에 들고 갈 시 한 편 정도는 떠올릴 것 같다. 내 마음을 말하는 시는 무엇일까. 나 또한 그 시를 해석해 줄 탐정을 만나고 싶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영원히 들키고 싶지 않기도 하다.
박현주 작가·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