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 마땅한 사람들
피터 스완슨 지음, 이동윤 옮김 l 푸른숲(2023)
누군가 나와 가족, 친구를 해하고도 법의 허점을 이용해서 빠져나간다. 이를 용서할 수 없는 주인공은 이 악인들을 직접 해치우기로 한다. 사적 복수와 처단은 너무나도 고전적인 설정이지만, 요새 소위 “장르물”이라고 하는 작품들에도 빈번히 나오는 소재이다. 자신의 억울함을 직접 상대에게 풀어내려는 욕망의 주인공들이 없다면 장르 자체가 텅 비어버릴 정도로 이런 서사가 범람한다. 다만 이런 이야기에서 사적 재판은 사회 전반의 부패와 제도적 허점을 지적하는 장치이면서도, 선정적 폭력성을 합리화하는 도구로 전락하는 경우가 있다. 즉, “처단해서 마땅한” 사람들의 처참한 몰락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며 오락적 흥미를 만족시킨다는 뜻이다.
피터 스완슨은 고전 추리소설의 장치를 영리하게 이용한 현대식 심리 스릴러를 쓰는 작가다. ‘죽여 마땅한 사람들’(노진선 옮김, 푸른숲)은 죽을 만한 악행을 저지른 사람을 직접 처리하는 살인자를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이었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열차 안의 낯선 자들’에서 영감을 받은 교환 살인으로 시작한 이 소설은 긴장감 있는 스토리와 더불어 개성적인 인물로 큰 반향을 얻었다. 최근 출간된 ‘살려 마땅한 사람들’은 이의 후속작으로 주요 인물과 세계관을 공유한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각 등장인물의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보는 다중시점을 채택해서 인간의 심연을 탐구하는 소설의 계보를 이어간다.
이전 사건의 실책으로 경찰직을 잃은 헨리 킴볼이 후속작에선 사립탐정 사무소를 연다. 어느 날, 오래전 제자였던 조앤이 찾아와 자기 남편의 불륜 조사를 맡긴다. 처음에는 평범한 치정 문제로 보인 사건은 예상치 못한 살인으로 흐르고, 헨리는 과거 학교에서 일어났던 총기 살인과의 유사점을 발견한다. 조앤을 의심하는 헨리는 이전 사건에서 자신을 찌르고 스토커로 고발한 릴리에게 도움을 청하러 간다.
악을 법이나 도덕의 권위에 맡기지 않고 직접 처단하는 인물은 “매력적인” 사이코패스로 그려지는 경향이 있다. 보통의 양심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직접 나서기가 두렵기도 하고 거리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다른 도덕관을 가진 인물이 있다면 이런 딜레마가 손쉽게 해결된다. 소설 속 릴리 킨트너라는 인물이 그렇다. 릴리는 쾌락과 편의를 위한 살인자와는 미묘하게 다르게, 살려줄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인물을 처리하고 회한을 느끼지 않을 뿐이다.
평범한 사람으로서는 쉽게 매혹되는 이야기이다. 모두 억울함과 분노가 있고, 법의 사각지대가 있다. 소위 “사이다 서사”라고 불리는 개인 복수와 대리 처단의 이야기들은 이 지점을 파고들어 보는 이들에게 대리만족을 준다. 하지만 적어도 피터 스완슨처럼 인간의 다양한 유형과 미묘한 차이를 탐구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사적 처단의 서사는 결국 시원한 기분보다는 피상적 재미만을 남긴다. 심지어 피터 스완슨의 소설이라도 같은 패턴이 반복되면 의구심이 든다. 내가 여기서 얻으려 한 것은 악인을 처단할 권리에 대한 도덕적 통찰이었던가, 아니면 정당성 있는 폭력을 보는 스릴이었던가. 어느 쪽을 구하든 독자의 잘못은 아니지만, 매혹적인 사이코패스 살인자가 과다하게 등장하는 시대에 생각할 질문이다.
박현주 작가·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