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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시인의 마을] 뜨거운 나뭇잎 - 김중일

등록 2022-04-22 04:59수정 2022-04-22 09:04

저물 무렵 나는 귀신의 옷을 주워 입다가 어깨가 뜨거워 돌아보니 나뭇잎 한 장이 붙어 있다 온종일 발바닥이 불판을 디디고 있는 듯 화끈거려 발을 들어보니 밑창에 나뭇잎 한 장씩이 어느새 달라붙어 있다 내내 손에 땀이 차서 양손을 펴보니 손바닥에 손금 가득한 나뭇잎이 한 장씩 붙어 있다 낮에는 돋보기로 손금에 잔주름을 새겼다 벌레가 파먹은 나뭇잎처럼 까만 구멍만 뻥뻥 뚫렸다 너무 뜨거우면 차갑다고도 했나, 양 볼이 빨갛게 얼어붙어 살펴보니 비에 젖은 나뭇잎이 붙어 있다 타오르는 얼굴이 부끄러워 집으로 뛰어 들어가려는데, 사방 길을 막고 제지하는 무수한 손바닥, 손사래 치는 나뭇잎들 나뭇잎에 둘러싸여 어디로도 갈 수 없게 된 나는 나무가 되어버렸다, 내 의지와 무관하게 나뭇잎을 기워 만든 누더기를 입고 조만간 내 피부의 주름을 모두 이으면 지구 한 바퀴쯤 되는 날이 올 것이다 어디로도 갈 필요가 없게 된 그날부터 내 피부의 부피는 곧 지구의 부피다 우주적인 나뭇잎 한 장이다

-시집 <만약 우리의 시 속에 아침이 오지 않는다면>(문학과지성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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