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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맥아더 장군을 모시고 굿을 했던, 무당을 만나러 갑시다 [책&생각]

등록 2022-12-16 05:00수정 2022-12-16 11:05

홍칼리가 만난 6명 무당 이야기
다양한 소수자성 지닌 무당들

일의 의미부터 업계 고충까지
신비화하기보다는 일상화 접근
3년차 무당으로 활동하고 있는 홍칼리 작가. ©홍승은, 한겨레출판 제공
3년차 무당으로 활동하고 있는 홍칼리 작가. ©홍승은, 한겨레출판 제공

무당을 만나러 갑니다
함께 우는 존재 여섯 빛깔 무당 이야기
홍칼리 인터뷰집 l 한겨레출판 l 1만5500원

‘무당 선생님’들을 만난다. 묻고 듣고, 오랫동안 말로 전해져 온 세계를 문자로 기록한다. “쓰고 그리고 춤추고 연대하고 싶어서 무당이 되었다”고 자신을 소개하는 홍칼리의 <무당을 만나러 갑니다>는 다른 무당들과, 또한 독자들과 연결되고자 하는 책이다. 책의 부제에서 정의하는 무당은 ‘함께 우는 존재’이며, 본문에서 설명하는 무당은 ‘길흉화복을 점치는 사람이기 이전에 지구와 이웃을 돌보는 사람’이고, ‘종합예술가’이며 ‘희생하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무당을 신비화하는 내용으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무당이라는 업을 하는 사람 여섯 명을 만나 생활인, 직업인의 관점에서 그들과 대화를 나누며 앞길을 열어가는 쪽에 가깝다. 대화는 무당에 대한 역사적, 사회적 인식과 현실 사이로 흐른다. 홍칼리는 성별, 장애 유무, 경력, 학력, 나이에 상관없이 다양한 소수자성을 가진 무당을 만났다. 이들 중에는 점사를 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점사를 보지 않는 사람도 있다. 업계 사람들의 고충을 나누는 때도 있다. 예를 들어 어린이날 국회 앞에서 내림굿을 한 무무와 인터뷰에서 나누는 이야기는 “투자 관련 고민이 있는 분이 오시면 어떻게 하세요?”다. 개인이 불행해지는 구조적인 문제는 보지 않고 개인만 빌어주는 일이 근본적인 해결책일까 싶어서다. 주로 어디에 기도하러 가느냐는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한다. 그러면서 무당으로 살아가는 여성들의 생활사가 조금씩 풀려나온다.

3년차 무당으로 활동하고 있는 홍칼리 작가. ©홍승은, 한겨레출판 제공
3년차 무당으로 활동하고 있는 홍칼리 작가. ©홍승은, 한겨레출판 제공

세상을 떠난 만신 김금화의 조카이자 제자이고 서해안 풍어제를 주관하는 혜경궁 김혜경이 첫 번째 인터뷰이이다. 집안 형편 때문에 고모와 살면서 무당은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마음이 둘째 아이를 낳고 바뀔 수밖에 없던 상황을 이야기한다. 시각장애가 있는 송윤하는 안마를 주업으로 하면서 상담을 한다. 트랜스젠더 무당 예원당은 성소수자 손님들을 많이 만난다. 그리고 거듭되는 대화를 통해 무당이 한국 사회에서 긴 시간 돌봄의 역할을 수행해왔다는 점이 언급된다. “그렇다면 왜 많은 무당이 폭력의 피해자가 아니라 힘 있는 장군님을 모시는 일에 더 집중할까요?” 한국전쟁 직후에 맥아더 장군을 신령으로 모시는 강신무들이 생겨난 이유는, 대동굿판을 여는 무당 솔무니의 설명에 따르면, 6·25 전쟁 때 희생된 망자를 달래야 했기 때문이다. 힘없는 민중을 달래기 위해 가장 힘 있어 보이는 맥아더 장군이라도 모시고 굿을 해야 했다는 이야기. 그렇기 때문에 바뀐 시대에는 세월호 참사 이후 희생자의 죽음을 애도하는 굿판이 열렸다. 홍칼리는 무당이 듣는 목소리가 사회적 참사의 사망자들의 것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3년차 무당으로 활동하고 있는 홍칼리 작가. ©류한경, 한겨레출판 제공
3년차 무당으로 활동하고 있는 홍칼리 작가. ©류한경, 한겨레출판 제공

책 말미에 실린 추천의 글에서 김혜순 시인은 무당과 시인을 나란히 놓고 사유한다. 시인도 무당도 목소리를 ‘듣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시인과 무당의 ‘들림’은 부재자의 목소리를 ‘들음’에서 온다. 또한, 예원당의 표현대로라면 산 사람은 “살아 있는 귀신”이다. 책의 부록인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를 위한 성명서’가 ‘무속인 정의연대 굿판’의 명의로 실린 이유일 것이다. 산 자와 죽은 자의 목소리를 듣는 일, 그들을 위해 비는 일. 홍칼리는 이 인터뷰집에서 용어 설명부터 개인적 술회에 이르기까지 적극적으로 해설을 추가하는데, 타인의 목소리를 듣는 업을 가진 무당의 삶을 듣고 이해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 결과 <무당을 만나러 갑니다>는 무당에 대한 신비화보다는 일상화에 가까운 시도로 완성됐다. 어느 쪽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해도 충분히 재미있게 읽힌다.

이다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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