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혜가 다시 만난 여성
제시카 아우 지음, 이예원 옮김 l 엘리(2023) 엄마와 딸이 함께 여행을 떠난 이야기라면 흔히 기대하는 이미지가 있다. 어느 한쪽의 집착과 상대의 탈주 욕망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이랄지, 묵은 과거를 둘러싼 영영 해소되지 않을 갈등이랄지. 얼핏 출산과 육아의 재현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모녀간의 이야기에는 고통과 상처와 체액과 분열과 기이한 행복감이 교차한다. 그러나 제시카 아우가 진술하는 모녀의 일본 여행기는 시종일관 담담하고 가만하며 쓸쓸함과 호젓함 사이를 고요히 걸어간다. 더 이상 같이 살지 않고 자주 연락하지도 않는 엄마와 딸은 각자 다른 도시에서 다른 비행기를 타고 도쿄에 도착한다. 도쿄의 유명 미술관과 박물관을 찾아가고 이후 오사카로 교토로 향하는 일정은 사실 전부 딸의 선택이다. 딸은 여행지로 엄마를 이끌면서 조용히 엄마의 안위를 살피고, 엄마는 딸의 이야기에 집중하며 고개를 끄덕이기는 해도 자신의 감상이나 주장을 입 밖에 내지 않는다. 두 사람은 갈등하거나 싸우지 않지만 특별히 교감하는 것 같지도 않다. 같은 공간을 나란히 걸으며 미술 작품을 감상하면서도 두 사람의 시간과 공간은 다르게 흘러간다. 소설의 화자가 딸인 만큼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딸의 시선으로 엄마를 바라보게 되는데, 화자가 엄마에게 들려주는 과거의 경험들과 엄마에게 차마 말하지 못하고 상념의 진술 형태로 독자들에게만 전해지는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는 딸과 엄마가 ‘따로 또 같이’ 박물관 안에 머물며 서로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다시 만났다 하는 것처럼 두 사람 사이 이해와 몰이해의 줄타기를 경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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