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시아 오직 지음, 오숙은 옮김 l 문학과지성사(2023) 젊은 엄마 로사는 15개월 된 딸을 숄 안에 감추어 안고 열네 살의 깡마른 조카 스텔라와 함께 어디론가 끌려가는 중이다. 소설의 배경을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 건 오직 “로사의 코트에 꿰매어 단 별처럼 노란색”이나 “막사” “전기 울타리” 같은 단어뿐이다. 춥고 배고픈 스텔라는 숄로 보호받는 아기 마그다를 시샘하며 언제라도 마그다의 숄을 빼앗길 바란다. 그러나 마그다는 말라버린 엄마의 젖 대신 자신을 감싼 숄 모서리를 붙잡고 빨며 연명한다. ‘숄은 맛이 좋았다. 리넨 젖이었다.’ 어느 순간 추위를 이기지 못한 스텔라는 마그다의 숄을 가져가고, 마그다는 숄 혹은 엄마를 찾아 울부짖으며 위험 구역까지 갔다가 ‘헬멧’을 쓴 군인에게 들키고 끔찍한 최후를 맞는다. 이 모습을 고스란히 목격한 로사는 늑대처럼 울부짖어 ‘그들’에게 총을 맞을 수도 있었지만, 숄로 제 입을 막아 목숨을 건진다. ‘숄’에는 아주 짧은 단편 ‘숄’과 그보다는 긴 단편 ‘로사’가 수록되어 있다. 앞은 뼛속까지 추운 수용소를 배경으로 한 과거의 이야기고 뒤는 온몸이 튀겨질 정도의 뜨거운 플로리다 마이애미에서 펼쳐지는 오늘의 이야기다. 그러나 ‘숄’은 ‘로사’의 과거나 전제가 아니고 ‘로사’는 ‘숄’의 후일담이 아니다. 두 단편 모두 여전히 진행 중인 고통과 상처의 지옥을 묘파한다는 면에서 차라리 거울상 쌍생아로 보인다. ‘로사’의 로사는 조카 스텔라와 함께 미국에 사는 중년 여성이다. 사람들과 조카에게 “미친 여자이자 과거의 쓰레기” 취급을 받으며 살다가 지금은 먼 플로리다 마이애미에 혼자 살고 있다. 로사의 생활비를 책임지는 스텔라는 로사에게 반드시 “회복되고” “병적인 것이 없는” 상태로 돌아오라고 강요한다. 그러나 로사는 스텔라가 말하는 회복의 방향과는 정반대로 걸어가며 호텔 투숙객만 들어갈 수 있게 해변에 둘러친 울타리를 히틀러의 짓이라고 항의하고, 수용소를 경험한 유대인의 트라우마를 연구한다는 미국인 학자를 차갑게 외면한다. 로사의 유일한 낙은 죽지 않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상상하는 딸 마그다에게 이제는 거의 잃어버린 폴란드어로 편지를 쓰는 일이다. 펜을 잡으면 기적처럼 폴란드어가 흘러나온다. 혀에 채워진 자물쇠가 제거된다. 딸에게 편지를 쓸 때의 로사는 하나의 역사를 만들고, 말하고, 설명하는 힘이 솟아오른다. 그러나 서글프게도 로사가 진술하는 이 ‘역사’는 현존하지 않는다. 빨래방에 간 로사는 자신보다 수십 년 먼저 미국에 온 유대인 이민자 노인을 만나 대화한다. 히틀러의 유대인 탄압을 직접 겪지 않은 노인에게 로사는 차갑게 대꾸한다. “저의 바르샤바는 아저씨의 바르샤바와 달라요.” 이에 노인은 대답한다. “댁의 플로리다 마이애미만큼은 나의 플로리다 마이애미와 같아요.” 두 사람의 대화는 역사란 체험과 목격의 정도에 따라 누구에게나 다를 수 있지만, 그 폭력과 잔혹함의 영향력을 나눠 가진다는 면에서는 누구에게나 비슷할 수도 있다고 말한다. 마치 숄이 로사와 마그다와 스텔라를 순간적으로나마 덮어주었다는 면에서는 같지만, 오늘을 살아가는(혹은 살지 못하는) 세 사람에게 갖는 의미가 다른 것처럼. 이주혜 소설가·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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