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신랑 들이기
다와다 요코 지음, 유라주 옮김 l 민음사(2022)
단편 ‘페르소나’의 주인공 미치코는 남동생과 함께 독일에서 유학 중이다. 어느 날 독일 친구 카타리나가 자신이 근무하는 정신 병원에서 직장 동료이자 한국인인 김성룡이 여성 환자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해준다. 카타리나가 들려준 진상규명을 위한 회의에서 오갔다는 대화는 미치코의 감정을 뒤흔든다. “성룡은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착하게 보이지만 전문가의 눈으로 들여다보면 이상할 정도로 표정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뒤에 잔인함이 숨어 있어도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 (중략) 카타리나는 참을 수가 없었다. 성룡은 아시아인이니 선천적으로 표정이 없고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냐고, 용기를 내서 말했다. 그리고 또 용기를 내서 덧붙였다. 내 친구 미치코라는 이름의 일본인도 표정이 없지만 그 뒤에 잔인함을 숨기고 있지는 않다고.” 미치코를 건드린 건 김성룡이 무표정 뒤에 잔인함을 숨기고 있을 거라 확신하는 독일인들의 편견이었을까, 아니면 아시아인이니 ‘선천적으로’ 표정이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용기를 내어 발언한 친구 카타리나의 두둔이었을까?
표제작 ‘개 신랑 들이기’는 신도시 개발 붐이 한창이었던 1990년대 도쿄를 배경으로 이른바 ‘정상 가족’이라는 허울이 자신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 여타 가족 혹은 개인을(여성 1인가구, 성소수자, 한부모 가정, 빈곤 가정 등) 얼마나 무자비하게 소외시키는지를 신랄하게 담아낸 작품이다. ‘정상 가족’을 위해 건설된 새 아파트 단지 건너편, 낙후된 옛 동네에서 학원을 운영하는 미쓰코 선생님은 코 푼 휴지로 엉덩이를 닦으면 기분이 좋다. 옛날 어느 충직한 개가 볼일을 본 공주의 엉덩이를 핥아 주는 임무를 완수하고 공주의 신랑이 되었다는 둥 아이들에게 기묘한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이상한 소문의 주인공이다. 그러던 어느 날 분명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어쩐지 개처럼 행동하는 ‘다로’라는 남자가 미쓰코 선생님을 불쑥 찾아와 함께 생활하게 되면서 미쓰코를 둘러싼 소문은 한층 더 뿌옇고 매캐한 안개에 휩싸인다.
일본어와 독일어로 글을 쓰는 이중 언어 작가 다와다 요코는 지리와 언어, 인종, 국가 등 다양한 경계의 교차점에서 초문화적이고 혼종적인 문학 세계를 구축해왔다. 두 단편 중 하나는 독일을 또 하나는 일본을 배경으로 전개되지만, 국가와 국가 사이의 경계, 문화와 문화 사이의 경계, 언어와 언어 사이의 경계, 현실과 설화적 공간의 교차를 통해 탈영토적, 탈경계적 상상력을 실천해온 작가의 문학적 원류를 발견할 수 있다.
‘페르소나’의 미치코는 아시아인은, 일본인은, 한국인은, 베트남인은, 여자는 어떻다더라는 촘촘한 오해와 편견의 맹공에 시달리다 결국 남의 집에서 훔쳐낸 가면을 쓰고 거리를 활보할 때야 비로소 묘한 해방감을 느낀다. 미치코의 ‘무표정’의 다른 변주라고 할 만한 ‘개 신랑 들이기’의 ‘비정상’ 낙인은 미쓰코 선생님의 학원 문을 닫게 한다. 그러나 어디론가 떠나는 미쓰코 선생님의 모습은 자신이 선택한 사람(들)과 새로운 가족을 구성할 미래를 암시한다. 다시 말해 그 떠남은 무표정과 비정상을 허락하라는 무언의, 그러나 강렬한 몸짓이다.
이주혜 소설가·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