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개막한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송경동 시인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 논란이 있는 오정희 소설가의 2023 서울국제도서전 홍보대사 임명에 항의하며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의 ‘얼굴’ 가운데 가장 원로인 오정희 작가를 “블랙리스트 가담자”라 규탄하는 성명을 본 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 활동을 종합한 백서를 폈습니다. “출판과 출판의 자유는 민주주의를 담는 그릇”이라 밝히는 행사에서 과연 있을 수 있는 일일까, 도대체 오 작가는 어떤 일을 한 걸까, 잘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문제로 지적된 ‘2015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내용을 집중적으로 봤습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예술위) 주관으로 역량 있는 문학인이 창작에 전념하도록 연간 1천만원을 100명에게 지원하는 2015년 사업(959건 지원)에서, 심사위원들이 3단계 심의를 진행하는 동안 문화체육관광부는 끊임없이 윗선에서 받은 ‘배제 대상자’ 명단을 하달했습니다. 이들이 잘 걸러지지 않자, 결국 예술위 위원들이 나서서 선정 인원을 아예 70명으로 축소해버리는 방법으로 대상자들을 걸러냅니다. 문학 분야 예술위원이 바로 오 작가였습니다. “문학 분야 오OO 위원, 심사위원 5인 대상 설득 작업중”이라는 기록과 진술들은 그가 당시 어떤 일을 했었는지 드러내어 줍니다.
“오OO가 2015~2016년 2년간 예술위 밖으로 아무 잡음도 내지 않고 예술위 위원직을 수행했을 때 우리는 이미 그가 블랙리스트 실행의 협력자라는 사실을 알았어야 했다.”
백서에서 노이정 연극평론가는 이렇게 지적합니다. 문화예술을 키우는 우리 사회의 공공성은 무관심과 방조 속에서 은밀하게 파괴됩니다. 그리고 그 파괴의 현장은 권위 있고 화려한 얼굴 뒤로 감춰집니다. ‘책의 축제’에서, 이보다 더 절박하게 이야기 나눠야 할 주제가 또 있을까요?
최원형 책지성팀장
circl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