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의 재조명> 한국전쟁학회 편. 명인문화사 펴냄. 2만3000원
잠깐독서 /
소련군의 만주·북한 침공 개시부터 미국의 한반도 분할계획이 확정된 8월10일 밤 9시께까지의 시간차는 만2일간에 11시간을 보탠 59시간이나 됐다. 소련군은 만주에서 하루에 가장 많이 진격한 날(9~10일)이 100~200㎞였으나 북한에서는 같은 시기 경흥 방면에서 들어온 뒤 웅기를 향해 약 20㎞ 진격한 상태였다. 이런 전황으로 보건대 소련군의 북한 진격 때문에 미국이 그토록 다급하게 한반도에 38선을 그어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럼 왜 그었나? 미군은 그때 조선주둔 일본군 사령관이 도쿄 대본영에 보낸 암호전문을 입수했다. 그 내용은 조선군(조선관할 제17방면 일본군 전체)을 만주쪽 관동군 작전지휘 아래 두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관동군이 소련군에게 항복할 경우 한반도 전체도 소련 지배하에 들어가게 된다.
이에 앞서 맥아더는 규슈나 간토 상륙작전을 통한 일본점령을 계획하고 한반도를 미군 침공작전지역에서 제외했다. 그의 일본 제일주의는 만주와 조선에서의 전력공백은 소련군에게 맡기자는 것이었고 그것이 한반도 분할을 자초했다.
일본이 보름 정도만이라도 일찍 항복했더라면 한반도는 분단되지 않았고 한국전쟁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김기조 외교안보연구원의 ‘38선 획정의 국제적 요인: 한반도 분할과정의 재조명(1941~45)’은 예컨대 좌우대립 등 한민족 내부의 정치적 분열이 분단을 자초했다는 한반도 분단 내인론이 허망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한국전쟁과 그 이후 남북대결까지를 본다면, 한반도 분단이 처음 외인론이 우세한 복합형에서 점차 내쟁적 성격이 우세해지는 복합형으로 추이해왔다는 이완범 한국학중앙연구원의 논문도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예컨대 유럽의 아메리카 점령, 영국의 인도 식민지배, 일본의 조선 식민화를 살필 때 각기 아메리카 인디언, 인도인, 조선인들 내부의 정치적 분열, 내쟁이 그런 결과를 부른 한 요인이 됐다는 설명이 의미가 있을지? 한반도나 독일, 베트남의 분단이 민족내부 단결로 막을 수 있는 차원이었을까. 김계동, 박태균 등 한국전쟁학회 회원 14명이 필자로 참여한 <한국현대사의 재조명>(명인문화사)은 분단뿐만 아니라 한국전쟁, 그리고 그 이후까지를 다룬다. 절반 이상은 새로 쓴 것이며, 나머지도 학회나 세미나 등에서 발표했던 것들을 새로 손질한 것이어서 최근 연구의 흐름과 성과를 제대로 접할 수 있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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