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 형사, 탐정클럽-살인을 둘러싼 이야기들> 외르크 폰 우트만 지음.김수은 옮김.열대림 펴냄. 1만2800원
잠깐독서 /
인간은 살인 사건에 열광한다. 이 끔찍한 명제를 부정하려면, 미국 드라마 시리즈 <시에스아이(CSI) 수사대>가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모은 이유를 달리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형사 콜롬보, 셜록 홈즈,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이 지난 수십년 동안 ‘스타’로 군림한 까닭을 밝힐 다른 방도를 찾아야 할 것이다.
잔혹한 킬러와 이를 쫗는 형사(탐정) 이야기는 실재와 허구의 경계를 넘나들며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지만, <킬러, 형사, 탐정클럽>의 지은이 외르크 폰 우트만에 따르면 이처럼 살인사건이 ‘수사’의 대상이 된 것은 유럽에선 19세기 들어 생긴 일이다. 이전까지는 킬러보다 훨씬 잔인한 방법으로 용의자를 고문한 뒤 자백을 받아내는 일이 흔했다.
수사관의 등장은 ‘추리소설’이라는 매력적인 신세계를 열어젖혔다. 바야흐로 셜록 홈즈와 에르큘 포와로가 파이프 담배를 문 채 예민한 ’뇌세포’를 자랑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대문호들도 살인사건에 주목했다. 스탕달은 <적과 흑>에서 동시대에 벌어진 ‘따끈따끈한’ 두 건의 살인을 각색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프랑스의 유명한 살인범 라세네르의 정신세계를 <죄와 벌>의 라스콜로니코프에 투영했다.
허구 세계의 살인 사건을 당대 현실과 대비해 설명하던 저자는, 책 중반부부터 실제 현실에서 벌어진 끔찍한 사건들의 전모를 쉼없이 풀어놓는다. 20세기 들어 살인은 인종, 계급, 문화적 갈등과 뗄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총기의 발달이나 디엔에이(DNA) 수사 등 ‘과학’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됐다.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 영원히 미궁에 빠져버린 사건들에 이어 살인범 처형이 또다른 ‘사회적 살인’은 아닌지 묻는 작가의 이야기를 숨가쁘게 따라가니 어느새 책 말미다. 눈 하나 꿈쩍 않고 앉은 자리에서 수 백건에 달하는 살인 사건을 섭렵한 독자 자신이야말로, ‘인간이 살인에 열광한다’는 가슴 아픈 명제를 증명한 셈이 아니겠는가. 이미경 기자 friend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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