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봉/문학전문기자
최재봉의 문학풍경
6월 16일, 오늘은 ‘블룸스 데이’(Bloom’s Day)라는 이름으로 세계문학사에 뚜렷이 등재되어 있다. 블룸스 데이란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율리시스〉의 배경인 1904년 6월 16일을 기리는 날로, 소설 주인공인 레오폴드 블룸의 이름에서 따왔다.
소설 〈율리시스〉는 이날 하루 동안 주인공인 레오폴드 블룸이 더블린 시내를 배회하는 내용을 축으로 그의 아내인 몰리 블룸, 예술가를 꿈꾸는 청년 스티븐 디덜러스 등 세 명의 중심 인물을 등장시킨 소설이다. 현대 영문학 최고의 작품으로 꼽히는 문제작이지만, 난해한 문체와 현란한 기법, 방대한 분량 때문에 일반인들이 읽기에는 어렵다는 평을 듣는다.
그럼에도 소설 주인공 이름을 딴 블룸스 데이는 더블린 시민과 아일랜드 국민은 물론 전 세계 문학 애호가들 사이에 대표적인 문학 축제로 자리잡았다. 해마다 6월 16일이 되면 소설 무대인 더블린에서는 레오폴드 블룸의 행적을 따라 걷거나 소설 〈율리시스〉의 의미를 되새기는 다채로운 행사들이 마련된다. 축제는 대개 1주일 전부터 시작되는데, 올해의 경우 지난 9일부터 조이스와 〈율리시스〉를 소재로 한 영화 상영과 노래 공연, 전시회, 걷기 행사 등이 펼쳐졌거나 진행되고 있다.
블룸스 데이의 절정은 역시 당일인 16일. 이날 아침 더블린의 제임스 조이스 센터에서 ‘블룸스 데이 브렉퍼스트(아침)’를 먹는 것으로 시작된 축제는 지역 명사들과 조이스 마니아들이 참가하는 〈율리시스〉 낭독회와 연주회, 뮤지컬 등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블룸스 데이의 핵심은 아무래도 주인공 블룸의 발길을 따라 더블린 시내를 걷는 답사(walking tour)에 있다. ‘레오폴드 블룸의 발자국을 좇아서’라는 이름의 답사 프로그램은 이미(11, 13, 14일) 진행되었고, 16일 하루 동안에만도 ‘조이스와 영화’ ‘음악과 정치’ 등을 주제로 한 다양한 테마 답사가 예정되어 있다. 특히 올해는 조이스의 연작단편집 〈더블린 사람들〉이 출간된 지 100년이 되는 해여서 〈더블린 사람들〉의 무대를 밟는 답사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고 있다. 블룸스 데이의 마무리는 17일 정오 조이스 센터에서 있을 ‘〈율리시스〉의 기원들’이라는 강연이 장식할 참이다.
블룸스 데이의 성공을 보면서 생각한다. 우리 문학에서도 블룸스 데이와 같은 축제를 만들어낼 수는 없을까. 없지 않다. 한국판 ‘블룸의 길’에 해당하는 코스가 우리에게도 있다. 바로 ‘구보의 길’이다. 박태원의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주인공 구보가 걸었던 1930년대 경성의 중심부 노선이다.
건축학자 조이담씨는 〈구보씨와 더불어 경성을 가다〉(2005)라는 책에서 소설 속 구보의 하루를 1934년 8월 1일로 특정하고, 청계천변 다옥정 7번지 집에서 출발해 종로네거리와 동대문, 남대문과 경성역, 광화문통 등을 거쳐 집으로 돌아오는 총연장 15.7㎞(전차 구간 5.7㎞ 포함)의 ‘구보 노선’을 정리해 놓은 바 있다. 복원된 청계천과 광화문, 시청 광장, 서울역, 남대문 등을 포괄하는 이 노선은 한국판 ‘블룸의 길’로서 손색이 없어 보인다. 지난달 29일과 이달 9일 〈남한산성〉의 작가 김훈씨가 독자들과 함께 답사한 남한산성 길 역시 문학·역사 기행 코스로 개발할 만하다. ‘구보의 길’이든 남한산성로든, 한국판 ‘블룸의 길’의 출현을 꿈꾸어 본다. 최재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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