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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실패마저 아름답게 만든 도전과 용기

등록 2007-07-27 19:37

김용규/ 자유저술가·<문학카페에서 철학 읽기> 저자
김용규/ 자유저술가·<문학카페에서 철학 읽기> 저자
김용규의 문학 속 철학산책 / <노인과 바다>를 통해서 본 ‘삶’의 의미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여름이 오면 특별히 생각나는 작품이 있다. 내겐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가 그렇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늙은 어부가 오랜만에 거대한 청새치를 낚는다. 자기가 탄 조각배보다 더 크다. 그러나 돌아오는 길에 상어떼를 만나 고깃살을 모두 빼앗긴다. 항구에 돌아왔을 때에는 뼈만 앙상한 물고기 잔해만이 노인의 놀라운 투쟁을 증거 할 뿐이다. 참 허망하다. 그런데 이 허망한 이야기가 여름이 오면 어김없이 나를 부른다. 강렬하게 유혹한다. 왤까? 우선은 그 안에 그려진 자연 때문일 게다. 바다, 하늘, 별, 거대한 물고기, 아름다운 물새들, 무리지어 해변을 거니는 사자들 이야기가 멋지다. 하지만 더 멋진 것이 있다. 주인공인 산티아고 노인이 보여주는 삶의 태도다.

노인은 혼자 가난하게 산다. 죽은 아내의 사진도 색이 바래 치워버렸다. 찾아오는 사람도 없다. 가끔 음식물을 가져와 아프리카의 사냥이나 뉴욕 양키스의 야구이야기를 즐겨듣는 소년뿐이다. 그래서 작가는 ‘외로운’이나 ‘홀로’라는 단어를 반복해가며 노인의 쓸쓸한 삶을 그린다. 하지만 정작 노인은 외로워하지 않는다. 벌써 84일 동안이나 고기를 잡지 못했지만 절망하지도 않는다. ‘날마다 새 날’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잔고기가 잡히는 근해에는 결코 가지 않는다. 큰 고기만 찾아 먼 바다로 나간다. 그러다 드디어 엄청나게 크고 억센 청새치를 만나 이틀 밤낮을 맞붙어 싸운다.

물고기는 낚시를 문채 노인을 한없이 끌고 간다. 이윽고 시야에서 육지가 사라지고 밤이 찾아온다. 허기와 갈증은 그보다 앞서 왔다. 낚싯줄을 붙들고 견디는 노인의 손과 어깨에는 살이 패여 피가 흐른다. 그럴수록 노인은 “자신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위대한 디마지오 선수처럼, 발뒤꿈치 뼈를 다쳐 몹시 고통스러운데도 모든 플레이를 완벽하게 해 낸 그 훌륭한 선수처럼, 나도 훌륭하게 행동해야 한다.”라며 투지를 북돋운다. 별들이 떠오른 아름다운 밤하늘을 보면서 다짐도 한다. “나는 저 물고기에게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고, 인간이 어디까지 견딜 수 있는지를 보여 주겠다.”라고. 그리고 마침내 승리한다.

그러나 곧바로 또 다른 시련이 온다. 상어떼가 달려든 것이다. 노인은 이들과도 굽히지 않고 필사적으로 투쟁한다. “인간은 패배를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인간은 파멸 당할지언정 패배하지는 않는다.”라는 것이 노인의 생각이다. 그래서인지 결국 뼈만 하얗게 남은 청새치를 배에 매달고 지친 몸으로 돌아오지만 묵묵히 오두막집으로 올라가 사자들을 꿈꾸며 평화롭게 잠든다.

이 작품의 주제를 놓고 말할 때, 사람들은 흔히 삶에 있어 ‘과정’이 중요하냐 아니면 ‘결과’가 중요하냐를 따진다. 과정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노인이 거대한 물고기를 잡았기 때문에 훌륭한 것이 아니라 한다. 그 물고기를 설사 무사히 어촌으로 끌고 왔다고 해도 그가 더 훌륭해지는 것이 아니라 한다. 노인이 훌륭한 것은 어떤 고난이나 고통에도 포기하지 않고 있는 힘을 다해 도전하고 투쟁하는 과정에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앙상한 고기 뼈만 매달은 채 돌아왔지만 그는 결코 패배자가 아니라고 한다. 오히려 훌륭한 승리자라 한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과정보다 결과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명예로운 목적을 갖고, 역경 속에서도 고통을 참아내고, 훌륭한 기량으로 정정당당하게 싸웠다고 하더라도, 결과가 나쁘다면 결코 명예심을 가질 수는 없다고 한다. 때문에 노인의 불운한 처지를 동정하기는 하지만, 그가 승리자라고는 할 수 없다는 말이다. 맞는 말 같다. 사실 노인은 현실적으로 성공한 사람은 전혀 아니다. 소년이 식당 주인에게서 얻어 날라다 주는 음식과 맥주로 끼니를 때우는 사람이 가진 삶의 태도를 훌륭하다거나 명예롭다고 할 수도 없다. 그는 추억과 자기도취에 빠져 사는 고집쟁이 영감에 불과하다.


그러나 한번 바꾸어 생각해 보자. 그럼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눈앞에 보이는 이익만을 좇아 하루하루를 소모하고 있지는 않는가? 도전 대신 안락을, 용기 대신 타협을, 정직 대신 융통성을, 기량 대신 요령을, 명예 대신 이익을 내세우며 서서히 퇴락해가고 있지는 않는가? 그래서 때로는 그런 자신이 스스로까지도 역겨워지지 않는가? 한번 돌이켜 보자. 그러면 왜 가끔은 이 우직한 노인이 그리도 그리워지는지가, 그의 허망한 실패가 그처럼 아름다워 보이는지가가 비로소 드러난다. 명예로운 목적에 도전할 것, 패배할 수밖에 없는 역경 속에서조차 피하거나 비명 지르지 않고 묵묵히 고통을 참을 것, 최선을 다해 훌륭한 기량으로 싸울 것, 승패와 관계없이 명예심을 가질 것, 다시 말해 도전, 용기, 정직, 훌륭한 기량, 명예심과 같은 미덕들을 삶 속에 간직할 것, 바로 이것들이 우리가 노인을 그리워하는 이유이자, 그에게서 배워야 하는 삶의 태도가 아니겠는가! 잠시 생각해보자. 자유저술가·<문학카페에서 철학 읽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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