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봉 문학전문기자
최재봉의 문학풍경
예술은 절대 자유를 추구한다. 예술가에게 부과되는 제1의 정언명령이 있다면 그것은 ‘자유로워지라’는 것이다. 이념으로부터, 시장으로부터, 나아가 윤리와 도덕으로부터도 예술가는 자유로워야 한다. 예술은 자유의 표현이자 자유를 향한 싸움이다. 예술은 자유다.
그러나 현실에서 예술가는 그다지 자유롭지 않다. 그는 이념과 시장과 윤리의 간섭에 끊임없이 시달린다. 그것들을 상대로 한 그의 싸움은 번번이 패배가 아니면 타협으로 귀결되곤 한다.
오늘날 예술가의 자유에 대한 가장 심각한 위협은 시장으로부터 온다. 예술과 예술가에게 시장은 달콤한 조력자와 두려운 감시자의 두 얼굴을 지닌다. 예술가의 창작품은 시장을 통해 향수자에게 전달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시장은 마음에 들지 않는 작품을 차단하거나 변형시키기도 한다.
그런 시장의 횡포에 맞설 유력한 방안의 하나가 국가 또는 공공의 지원이다. 예술가로 하여금 시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유롭게 작품활동을 하도록 국가나 공공기관이 보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시장이라는 호랑이를 피하고 보니 국가 또는 제도라는 사자를 마주치는 격이랄까. 시장에서 자유롭고자 국가와 제도의 지원에 기대는 예술가의 딜레마가 여기에 있다.
박금산(35)씨의 연작소설 <바디 페인팅>(실천문학사)은 시장과 제도 사이에 끼인 예술가의 딜레마를 솔직하게 그려 보인다. 네 편의 연작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박금산’이라는 이름의 소설가가 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금을 받아 인도로 연수를 다녀오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소설이라기보다는 자전적 기록에 가까울 정도로 세부적 사실에 충실한 이 작품은 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금으로 대표되는 예술에 대한 공적 지원의 실상, 그에 연루된 예술가의 갈등을 접사촬영처럼 밀착해서 보여준다.
주인공인 소설가 박금산이 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금을 신청하게 된 것은 작품 창작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쪼들리는 생활비를 벌충하기 위한 목적이 컸다. 그는 인터넷에서 인도의 한 국립문자아카데미 사이트를 발견하고 제멋대로 그곳을 연수 대상지로 정해서는 서류를 작성해 문화예술위원회에 지원 신청을 한다. 결국 그의 서류는 그에게 800만원의 지원금을 가져다 주지만, 그는 애초의 연수 예정지 대신 엉뚱한 곳을 짧게 다녀오고 대부분의 돈을 생활비로 ‘전용’한다.
그뿐이 아니다. 지원 신청 과정을 시시콜콜히 쓴 연작 첫편은 역시 문화예술위원회에 의해 ‘문예지 게재 우수작품’으로 선정되어 400만원을 벌어 들인다. 학술진흥재단이라는 또 다른 공적 기구에서는 그가 쓴 박사학위논문 출판 계획서에 500만원을 지급하고, 그의 소설책에 대해서는 다시 문화예술위원회가 ‘우수문학도서’로 선정해 책을 구입해 줌으로써 그에 해당하는 인세 200만원이 굴러들어온다. 그러니까 불과 몇 달 사이에 도합 1900만원의 공돈이 생긴 것. 소설 속 작가는 이를 ‘제도에게서 받은 나의 잉여’라 표현하는데, 잉여를 획득한 예술가의 기분은 결코 개운하지가 않다. 개운하기는커녕, 지원금을 반납하거나 흐르는 물에 뿌려 버리고 싶을 정도로 까닭 없는 우울과 분노에 사로잡힌다. 그럼에도 작가가 또 다른 지원금 1200만원을 역시 문화예술위원회로부터 받게 된다는 연작의 결말은 오늘날 시장과 제도 사이에 끼인 예술가의 착잡한 현실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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