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봉 문학전문기자
최재봉의 문학풍경
‘세대론적 인정투쟁’이라는 말이 있다. 작고한 김현을 비롯한 4·19 세대 문인들이 앞세대인 50년대 문인들을 상대로 벌인 문단 안의 헤게모니 다툼을 두고 평론가 이명원씨가 쓴 표현으로 유명하다. 1990년대에는 ‘386세대’인 평론가 이광호씨 등이 자기 세대의 문인들을 4·19 세대 및 유신 세대와 구별해서 ‘신세대’라 일컬으며 적극적으로 옹호한 바 있다.
두 가지 사례에서 보듯 세대론적 인정투쟁이란 통상 자신보다 윗세대를 대상으로 펼쳐지게 마련이다. 문단 안의 지위를 선점한 앞세대를 상대로 후발 세대가 자신들의 존재와 몫을 인정할 것을 요구하며 치받는 것이 일반적인 양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거꾸로 된 세대론적 인정투쟁은 없는 것일까. 〈문학과 사회〉 가을호에 실린 4·19 세대 평론가 김주연씨의 글 ‘진리와 권력, 그리고 문학-문학의 쇄말화 현상 극복을 위하여’에서 그 한 사례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이 글에서 김주연씨는 젊은 세대의 문학을 강한 어조로 비판하면서, 현실의 핵심을 짚어내는 자신의 동세대 문인들(이청준 김주영 황석영 김원일 윤후명 김훈씨가 거명되었다)이야말로 오히려 “우리 소설의 젊은 현역들”이라고 적극 평가했다.
김주연씨가 젊은 세대 문학을 비판하는 까닭은 그것이 현실을 방기하고 엽기와 타락의 비속한 세태에 투항했다는 데에 있다. “전통 서사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내면서 성, 폭력 등의 엽기물에 함몰된 만화나 게임을 모방하고 추종하는 몰주체적인 행태가 새로운 소설의 주류로 부상하고 있다. 문학을 통한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할 타락한 현실 속으로 문학이 희희낙락 걸어 들어가고 있는 모습이다.” 그는 무엇보다 젊은 세대 문학이 문학 바깥의 현실에 대한 접점을 놓쳐버린 점을 안타까워한다. “진리를 향한 열린 길은커녕 문학 바깥의 세상과도 단절되고 유리되는 답답한 골방으로의 유폐에서 탈출해야 한다.”
흥미로운 것은 김주연씨의 글이 실린 〈문학과 사회〉 가을호가 ‘2000년대 문학의 키워드-젊은 비평가의 시선’이라는 특집을 마련해 김씨의 논지와 상반되는 주장을 펴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집에는 21세기에 등단한 젊은 평론가 8명이 참여했는데, 이 가운데 강유정씨는 ‘ANTI IDEA: 뉴 로맨서의 개인 암호’라는 글에서 현실과 무관한 자리에서 빚어지는 젊은 세대의 시와 소설을 ‘무성 생식’이라 표현하며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들은 현실에 기생하지 않고 자아를 확장한다.” “거기(=21세기 소설)에는 현실을 추동하는 충동이 없다.” 심지어 “소설을 통해 삶을 이해하고자 하는 태도는(…) 포르노그래피와 다를 바 없다.”
복도훈씨도 ‘산주검’(undead)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문학의 미래, 살아 있는 실존이란 모름지기 폐기물, 오염된 것, 쓰레기를 소각하는 것이 아니라 지저분하고 역겹더라도 그것들을 토대로 세워져야 한다”는 말로 젊은 세대 소설에 나타나는 엽기적 상황과 이미지를 적극 옹호한다. 살아서도 죽어 있는, 또는 죽은 채로 살아가는 ‘산주검’의 모습이야말로 ‘근대문학의 종언’ 이후 한국 문학의 실존과 운명에 대한 적실한 상징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김주연씨와 〈문학과 사회〉 특집 필자들은 30년 남짓한 나이 차이를 보인다. 부모와 자식 세대에 해당하는 양쪽의 ‘인정투쟁’이 어떤 양상으로 이어질지, 그리고 현 단계 한국 문학에는 어떤 흔적을 남길지 궁금하다.
김주연씨와 〈문학과 사회〉 특집 필자들은 30년 남짓한 나이 차이를 보인다. 부모와 자식 세대에 해당하는 양쪽의 ‘인정투쟁’이 어떤 양상으로 이어질지, 그리고 현 단계 한국 문학에는 어떤 흔적을 남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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