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봉 문학전문기자
최재봉의 문학풍경
한 권의 소설이 2002년 독일 문단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마르틴 발저(80)의 〈어느 비평가의 죽음〉이 그것이었다. 제목처럼 문학비평가의 죽음을 소재로 한 소설인데, 그 죽음이 원한을 품은 소설가에 의한 살인이라는 점, 그리고 소설 속 비평가가 실존인물을 모델로 삼았다는 사실이 논란의 핵심을 이루었다.
안삼환 서울대 독문과 교수가 번역한 〈어느 비평가의 죽음〉에서 주인공 앙드레 에를-쾨니히는 텔레비전 문학 프로그램 〈면담 시간〉을 진행하며 독일 문학계를 쥐락펴락하는 인물이다. 그가 어느 날 살해당하고, 소설가 한스 라흐가 유력한 용의자로 체포된다. 에를-쾨니히가 자신의 방송에서 한스 라흐의 소설을 가차없이 혹평했으며, 그에 분개한 한스 라흐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평론가에 대한 ‘반격’을 경고했다는 점이 그 근거였다.
〈어느 비평가의 죽음〉이 문제적인 것은 에를-쾨니히가 실제로 독일 문학계의 ‘황제’로 일컬어지며 영향력 있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문학 사중주〉를 오랫동안 진행했던 비평가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를 연상시킨다는 점 때문이었다. 소설 속에서 묘사되는 에를-쾨니히의 독특한 화법과 외양, 방송 스타일 등은 아닌 게 아니라 라이히-라니츠키를 빼닮은 터였다. 게다가 애초에 좌파 작가로 출발했던 마르틴 발저는 1970년대 중반 이후 가파르게 우파 민족주의자로 변신해 왔는데, 라이히-라니츠키는 2차대전 당시 바르샤바의 게토에서 탈출한 체험을 지닌 유대인이라는 점 역시 반유대주의에 민감한 독일 사회에서는 간과하기 어려운 대목이었다.
소설은 한스 라흐의 친구인 미햐엘 란돌프가 한스 라흐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인물들을 찾아가 증언을 청취하는 형식을 취한다. 그 과정에서 에를-쾨니히의 추악한 진면목, 그리고 그에 대한 사람들의 불만과 증오가 차례로 불거져 나온다. 증언에 따르면 에를- 쾨니히는 순전히 자신의 명성을 위해 작가들을 난도질하거나 띄워올렸으며, 엄밀한 분석보다는 선정적인 이분법으로써 의도적으로 화제를 만들곤 했다. 그는 주변 사람들을 동원해 노벨문학상이 비평가에게도 주어지도록 로비를 펼치는가 하면, 새로 등장한 젊은 여성 작가에 관한 소식을 들으면 “글을 잘 써요?”라는 질문 대신 “예뻐요?”라고 묻곤 했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그의 절친한 친구이자 조력자, 그리고 부인까지 나서서 그의 감추어진 악행을 공격하기에 이른다.
〈어느 비평가의 죽음〉을 놓고 독일 문단은 물론 언론 역시 격렬한 찬반 논쟁에 휩싸였다. 마르틴 발저 자신이 소설에서 표방한바 ‘작가의 복수’에 환호한 작가들이 있었는가 하면, 실존인물에 대한 인신공격의 비도덕성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문단의 권력자인 비평가가 유대인이라는 역사적 피해자이고, 약자인 소설가는 반유대주의라는 가해자의 쪽에 섰다는 사실이 사태를 한층 착잡하게 만들기도 했다.
소설은 후반부로 가면서 두 개의 커다란 반전을 마련해 놓는다. 그 반전까지를 포함해 이 작품은 윤리적 문제 말고도 상업적 전략을 내장한 ‘고급 오락소설’이라는 평가를 듣기도 했다. 그같은 결함에도 불구하고, 불건강한 권력에 휘둘리는 문단의 취약성, 문학조차 한갓 볼거리로 전락시키는 미디어의 작동에 대한 묘사는 우리 문학 현실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아 보인다. 최재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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