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한·일 두 여성 작가가 주고받은 편지

등록 2007-08-10 17:53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최재봉의 문학풍경

1995년 늦가을의 일본 서남부 소도시 마쓰에로 가 보자. 나중에 독도 영유권을 주장해서 말썽을 일으킨 시마네현의 현청이 있는 곳이다. 그해 11월 중순 이곳에서는 한국과 일본의 문인 3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제3회 한·일 문학 심포지엄이 열렸다. 일본 평론가 가라타니 고진이 일본 기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천황의 전쟁 책임을 강도 높게 비판함으로써 긴장감을 높였는가 하면, 무라카미 하루키와 시마다 마사히코를 합쳐 놓은 듯한 ‘무라카미 마사히코’라는 이름의 소설가가 “나는 짝퉁이 아니라, 하루키와 류에 이은 제3의 무라카미”라고 말해 폭소를 자아낸 것이 바로 이 행사장에서였다. 새침한 표정의 앳된 작가 유미리가 “어릴 적 부모님은 싸울 때가 아니면 무언가 은밀한 이야기를 나눌 때에만 조선(한국)어를 썼기 때문에 이 말은 내게 어쩐지 불길한 느낌으로 다가온다”고 발언한 것 역시 바로 이곳에서였다.

그곳에 또한 한국 작가 신경숙(44)씨와 일본 작가 쓰시마 유코(60)가 있었다. 마쓰에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그 뒤 몇 차례 더 이어진 한·일 문학 심포지엄 행사장에서, 그리고 이런저런 용건으로 상대국을 방문할 때마다 만나서 교분을 쌓아 왔다. 그리고 마침내 한국과 일본의 대표적인 문학 월간지에 서로에게 보내는 편지를 연재하기에 이르렀다. 2006년 3월부터 올 2월까지 1년 동안 한국의 〈현대문학〉과 일본의 〈스바루〉에 연재된 두 사람의 편지가 최근 〈산이 있는 집 우물이 있는 집〉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묶여 나왔다. 연재 당시부터 번역을 맡았던 김훈아씨 역시 95년 가을 마쓰에 심포지엄에 통역으로 참석했으니, 이 책은 인연의 소중함과 엄숙함에 대한 살아 있는 증거라 할 법하다.

16년이라는 나이 차에도 두 작가는 여성 작가라는 공통점을 바탕으로 일기를 쓰듯 진솔한 대화를 이어 간다. 신씨가, 전쟁에 내보내지 않으려는 집안 어른에 의해 가운뎃손가락을 작두로 잘린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려주면, 쓰시마는 어머니가 아닌 다른 여자와 정사(情死)를 감행한 소설가 아버지 다자이 오사무와 일찍 죽은 다운증후군 오빠, 그리고 역시 어린 나이에 사고로 잃은 아들로 인한 상처를 어렵게 털어놓는다. 신씨의 소설 〈외딴 방〉과 쓰시마의 소설집 〈나〉에 관한 서로의 독후감, 각자 새롭게 착수한 장편소설에 대한 포부, 프랑스 작가 르 클레지오라는 공통의 지인에 관한 이야기 등도 흥미롭다. 쓰시마는 5월호에 쓴 글에서는 신씨의 단편 〈풍금이 있던 자리〉를 흉내내어 ‘당신’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을 시험해 보기도 한다.

상대적으로 신씨가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과 가족 및 친구에 관한 사적 토로에 기울어 있다면, 쓰시마는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와 조선인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한·일 두 나라 사이의 역사적 앙금에 대해 적극적인 견해를 제출한다. “북한 문제는 한반도를 식민지화했던 일본인 우리 자신들의 문제이기도 합니다”라거나 “일본 정부의 ‘냄새 나는 것에는 뚜껑’이라는 대응방식 때문에 ‘종군위안부’ 문제는 꼬일 대로 꼬인 상태입니다” 같은 구절이 대표적이다.

두 사람을 한자리에 모이게 한 것은 역시 문학이었다. 쓰시마의 마지막 편지는 두 사람의 공통의 업인 문학에 대한 애정과 신뢰를 물음의 형식으로 피력하고 있다.

“기도의 장소에서 연극이 태어나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그렇게 우리들의 ‘기도’는 지금도 문학이라는 형태로 인류의 미래를 향해 있는 것일까요.”

최재봉 기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