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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깨지기 쉬운’ 청소년 세계에 눈을 돌리다

등록 2007-10-19 20:29

〈라일락 피면〉(왼쪽)과 〈깨지기 쉬운 깨지지 않을〉
〈라일락 피면〉(왼쪽)과 〈깨지기 쉬운 깨지지 않을〉
〈라일락 피면〉원종찬 엮음·공선옥 외 7명 지음/창비·9천원
〈깨지기 쉬운 깨지지 않을〉김혜진 외 6명 지음/바람의아이들·8천원

누구나 청소년 시절은 지나지만 스스로 ‘청소년’이고자 한 적은 없었던 듯싶다. ‘아이답다’란 말은 있지만 ‘청소년답다’란 표현은 어색한 것처럼. 최근 몇 년 사이 ‘청소년문학’에 대한 관심과 출간이 활발해지고 있지만 여전히 그 위치는 어정쩡하다. 동화와 성인소설 사이 어디쯤에 있는 걸까, 과연 실체가 있기는 있는 걸까,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지금 우리 문단의 중심에 서 있는 작가들이 내놓은 두 권의 ‘청소년문학 단편집’은 이런 의문들이 머지않아 풀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창비청소년문학’ 네 번째인 <라일락 피면>은 ‘선택’을 주제로 이름 있는 소설가와 동화작가 8명이 “개척자의 의지”로 창작해낸 단편들을 묶었다. 표지 제목에 뽑힌 공선옥의 작품은 ‘5·18 광주민중항쟁을 배경으로 폭압의 역사에 눌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386세대들의 못 다 핀 청춘’을 들려주고 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이처럼 비극적이지만 이어지는 방미진의 ‘영희가 O형을 선택한 이유’는 호기심 가득한 중학교 교실에서 혈액형을 두고 벌어지는 아이들의 수다를 경쾌하게 그리고 있다. ‘내가 그린 히말라야시다 그림’에서 성석제는 초등학교 사생대회에서 작품이 뒤바뀌었지만 ‘사실을 털어놓지 않는 선택’을 함으로써 끝내 유명작가와 평범한 주부로 엇갈리게 된 두 인물을 통해 인생의 아이러니를 보여주고 있다. 1981년생으로 지난해 등단한 신예 오진원은 ‘굿바이, 메리 개리스마스’에서 게이 커플과 대리모를 통해 얻은 아들이라는 파격적인 가족을 등장시켜 ‘불편한 시선 가득한 세상과 맞장 뜨는 선택’을 선보이고 있다.

청소년 문학 실체성 고민한 작가들
‘새로운 흐름’의 가능성 보여줘
’게이커플’ ‘5·18’ 등 소재 다양

오수연은 ‘너와 함께’에서 십대의 위태위태한 내면세계를, 조은이는 ‘헤바(HEBA)’에서 사촌 누나를 향한 중학생 소년의 연정을, 최인석은 ‘쉰아홉 개의 이빨’에서 계부의 가부장적 폭력에 맞서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소년의 고독한 선택을, 표명희는 ‘널 위해 준비했어’에서 대인공포증으로 인터넷 안에 숨어 사는 고교생 폐인의 방구석 탈출기를 담았다.


<깨지기 쉬운 깨지지 않을>은 청소년 소설 공모에서 발굴한 젊은 작가들과 동화작가의 신선한 감각이 돋보인다. 초등 고학년 독자용인 <달려라, 바퀴>와 초등 저학년용 <귀신이 곡할 집>에 이은 세 번째 ‘바람단편집’으로 7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이들에게 공통된 주제는 없지만 기존의 ‘문제적 청소년’ 대신에 평범하거나 모범생 아이들에게까지 시선을 돌린 것이 특징이다.

표제작인 김혜진의 ‘깨지기 쉬운…’에서 일찌감치 수시 합격을 해 오전수업만 한 뒤 ‘알바’를 하며 삼수생 오빠와 풋사랑을 키우는 고3 시은이가 대표적이다. 착한 일을 하고 그 이유를 논리적으로 써보라는 글짓기 숙제를 위해 마늘 까는 할머니를 돕는 현서(이상운의 ‘내가 왜 그랬지?’), 책과 영화에 빠져 사랑과 섹스에 눈 떠가는 연저와 민기(이경혜의 ‘리딩 이즈 섹시!’)도 이웃에 있을 법한 친구들이다.

첫사랑인 친구의 하숙집 주인 딸에게 연모의 시집을 전하지만 대답을 듣지 못한 좌절감으로 청년기에까지 방황하는 구식 문학소년(박상률 ‘세상에 단 한 권뿐인 시집’)과 전교조 합법화 운동에 뛰어들어 세상의 모순에 부딪치는 1980년대 운동권 고등학생(이경화의 ‘쥐포’)도 등장하지만 그들의 오늘은 결코 어둡지 않다.

문학평론가 원종찬은 <라일락 피면>에 덧붙인 해설에서 “문학은 세상과 불화하면서 세상을 구원하는 불온한 산소”라고 했다. 하지만 청소년문학은 차츰 늘어가고 있는 마니아층의 호응과 기대를 받으며 세상과 따듯한 교감을 나누게 될 것 같다. 두 출판사 모두 후속 작품들을 낼 채비를 이미 하고 있으니 말이다.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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