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라와 거인〉
읽어보아요/〈소라와 거인〉원재길 지음/한림출판사·8500원
아이들은 거인 이야기를 좋아한다. 아동문학이라는 장르가 생기기도 전에, 조나단 스위프트의 그 복잡하고 현학적인 소설 <걸리버 여행기>를 아이들이 재빨리 자기들 이야기로 끌어가버린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런데 아이들 이야기 속의 거인은 비극적 존재인 경우가 많다. <잭과 콩나무>의 거인도 그렇고 어부가 건져낸 병 속의 거인도 그렇다. 서양 이야기 전통에는 아예 ‘거인퇴치자’라는 모티프가 있다. 거인은 미련하고 위험하니까 보기만 하면 잡아 족쳐야 한다는 생각인 모양이다.
거인 이야기 전통이 없는 우리에게도 거인은 그런 존재로 여겨진다. <소라와 거인>의 거인은 그래서 괴롭다. 그저 남보다 덩치가 몇 배 크다는 것뿐인데, 사람들은 그를 미워하고, 산으로 몰아내고, 그것도 모자라 사냥해서 죽이려 든다. 남과 다르다는 게 정말 그렇게 죽어 마땅한 죄악일까? ‘다르다’를 ‘틀리다’로 바꿔 말하는 게 예사가 되어버린 이 사회가 거기 비친다. 이 팍팍한 세상을 좀 더 너그럽고 선하게 매만져가는 길은 어디 있을까?
이 거인은 그 길을 제시해 주는 듯하다. 산짐승 잡아먹는 것도 미안해서 풀과 열매만 먹고 사는 거인. 그는 조그만 여자아이 소라와 진심으로 친구가 되고, 글을 배우면서 행복해 한다. 불어난 계곡물에 휩쓸린 사람들을 슬쩍 구해주고 사라진다. 그런데도 그를 박해하는 사람들. 동굴 속에 모아 놓은 도토리와 밤은 불타고, 사냥개와 포수들은 뒤를 쫓는다. 유일한 친구인 소라도 할아버지 엄명에 더는 거인을 찾을 수 없게 된다.
거인은 마침내 분노를 폭발시키는데, 이 책의 색다르고 예쁜 점은 거기서 찾을 수 있다. 그건 ‘꽃 같은 분노’다! 화가 난 거인은 산과 들의 꽃을 모조리 삼키고, 사람들까지 삼켜버린다. 거인 뱃속에 들어간 사람들이 꽃과 섞여 “꽃향기를 물씬 풍기면서” 토해져 나오는 장면! 심각하고 무거운 주제를 가볍고 환하게 떠올려내는 동화의 동화다움이란 이런 게 아닐까. 능청맞고 유머러스한 상황과 문체도 거기에 한몫 단단히 한다. 초등 고학년.
김서정/중앙대 문예창작과 겸임교수·동화작가 sjchl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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