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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6년 만에 돌아온 김성동, 반갑다

등록 2007-11-16 21:27수정 2007-12-18 16:11

최재봉의 문학풍경 /

〈창작과비평〉 겨울호를 받아 보니 반가운 이름이 눈에 들어온다. 소설가 김성동씨. 단편소설 〈무섭고 슬픈 이야기〉를 발표했다. 이게 얼마 만인가. 2001년에 〈삼국유사〉 중 조신 이야기를 토대로 한 장편 〈꿈〉을 낸 뒤 소설로는 6년 만이다. 중단편에 한정해 말하자면 근 20년 만이 아닌가 싶다.

그는 몇 해 전부터 경기도 양평군 청운면의 한 산자락에 자리잡은 ‘비사란야’라는 이름의 ‘토굴’에서 기거하고 있다. 절도 아니고 절이 아닌 것도 아닌 그 집의 방 한 칸에는 작은 법당이 차려져 있고, 절집 출신인 그는 그곳에서 때 맞추어 예불을 드린다. 연전에는 초파일 무렵 그곳을 찾아 집 안에 함께 연등을 달기도 했다.

아무려나 반갑기 짝이 없는 새 소설 〈무섭고 슬픈 이야기〉는 바로 그곳 비사란야를 무대로 삼는다. 스스로를 ‘이 중생’이라 칭하는 1인칭 주인공을 내세운 소설은 크게 두 가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나는 인근에 이런저런 개발 계획이 생기면서 비사란야 앞 산길을 2차선으로 넓히는가 하면 서울에서 온 투기꾼들이 출몰하는 ‘토목공화국’의 현실에 대한 걱정이고, 또 하나는 백여년 전 의병들의 이야기.

의병들의 이야기와 현실의 결합 양상이 특히 흥미로운데, 이 이야기는 주인공이 산길에서 만나는 묘령의 ‘여자사람’을 매개로 해서 전개된다. 흑백 무명 치마저고리에 댕기머리를 한 이 여자사람의 이름은 분이. 그는 의병에 나간 연인 판돌이를 기약 없이 기다리고 있다. 분이라는 존재는 말할 나위도 없이 헛것이겠거니와, 주인공이 이 헛것을 보는 데에는 다 그럴 만한 까닭이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저세상으로 가지 못하고 한 맺힌 조선반도의 구만리장천 허공중을 떠돌고 계신 중음신들 천도할 수 있는 죽비소리 한번 내지 못하고 그이들 눈물 닦아줄 다라니 같은 소설 한편 써내지 못하는 나 같은 중생을 무엇으로 일러 왈 글지(작가)라 부를 수 있을 것인가.”

매킨지라는 서양 기자가 쓴 〈의병 종군기〉를 읽으며 주인공은 심한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인데, 그를 작가의 가탁이라 본다면 작가가 채무감을 느끼는 대상이 의병만은 아니라는 사실이 또한 중요하다. 거기에는 무엇보다도 6·25 발발 직후 야산에 끌려가 총살당한 좌익 활동가 출신 작가의 부친과 그의 동료들이 포함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문구·김원일·이문열씨 등과 함께 이른바 ‘애비는 남로당’ 계열 작가에 속하는 김성동씨는 1980년대 초에 〈풍적〉이라는 연재 장편을 통해 부친의 신원을 꾀했으나 군사정권에 의해 강제로 연재를 중단당한 바 있다. 그의 오랜 문학적 침묵에는 아버지의 얘기를 쓰지 못하고 있다는 자괴감이 작용했던 것이다. 〈녹색평론〉 올 5-6월호에 쓴 〈할아버지, 할아버지, 저희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되나요?〉라는 산문, 그리고 후배 작가 안재성씨의 〈이현상 평전〉에 붙인 발문에서 그는 모처럼 ‘용기를 내어’ 아버지의 이야기를 털어놓았고, 그것이 그로 하여금 다시 소설을 쓸 수 있게 했다.


오랜만의 전화 통화에서 그는 “그 이야기를 글로 공개하고 나니까 어떤 족쇄 같은 게 풀리고 자신감이 생기면서 다시 소설을 쓸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취재해 온 의병 이야기를 연작 형태로 계속 발표하는 한편, “오늘의 숨 막히는 상황”을 철학적 우화 형식으로 다룬 장편 역시 쓰고 있노라고 밝혔다. 〈만다라〉의 작가가 돌아왔다. 반갑다, 김성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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