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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역사는 그냥 외워? 물음표를 던져봐!

등록 2008-01-04 21:13

〈우리 과학의 수수께끼2〉(왼쪽)과 〈히스토리카 세계사〉
〈우리 과학의 수수께끼2〉(왼쪽)과 〈히스토리카 세계사〉
〈우리 과학의 수수께끼2〉
신동원 엮음.한겨레출판·1만3000원

〈히스토리카 세계사〉
J.M.로버츠 지음. 조윤정 옮김. 이끌리오·2만8000원

이번주에 청소년들이 읽을 만한 책들 가운데 두 권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 과학의 수수께끼 2〉, 2006년 가을 학기 카이스트에서 신동원 교수의 ‘우리 과학의 수수께끼’ 강의를 들은 학생 37명이 공동 작업한 결과를 모아 책으로 엮은 것이다. 〈히스토리카 세계사〉는 영국의 대표적인 역사학자가 쓴 독특한 역사 에세이로 연초 1, 2권에 이어 나머지 여덟 권이 한꺼번에 완간됐다.

두 책 모두 나름의 의미가 있겠다 싶어 찬찬히 살펴보며 저울질을 한 끝에, 결국은 둘을 함께 추천하기로 했다. 언뜻 거리가 먼 듯 보였던 두 책이 일맥상통할 뿐만 아니라 서로 보완해서 읽어야 할 이유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2004년 선배 수강생 28명이 여덟 가지 유물의 수수께끼를 풀어내 호평을 받았던 ‘1편’에서처럼, ‘2편’에서도 학생들은 금속활자, ‘천상열차분야지도’, 〈철정산내외편〉, 최한기의 ‘기학’, 풍수지리, 정약전과 〈자산어보〉, 거북선, 측우기까지 학계 안팎에서 논쟁이 끊이지 않는 여덟 가지 주제를 통해 선인들의 과학적 성취와 최신 연구 상황을 추적한다. 교수는 수수께끼를 던질 뿐, 그 답을 찾는 일은 전적으로 학생들의 몫이다. 참고문헌이나 인터넷 검색으로 떠돌아다니는 정보를 짜깁기하는 대신, 직접 금속활자를 주조하고 인쇄하는 과정을 재현해보기도 하고, 전국 각지의 박물관과 과학자들을 직접 찾아가 자문을 구하거나 유물의 자취를 확인해 보았다. 그들을 이처럼 집요하게 이끈 화두는 바로 ‘왜?’.

이를테면 3장에서 세종이 칠정(七政·해, 달, 다섯 개의 별)에 관심을 쏟은 이유는 무엇일까? 일식 예측이 15분 틀렸다는 이유로 일기예보 담당자가 곤장을 맞았다는 실록의 현장에서 출발해, 세종이 15분의 오차를 고치기 위해 그때까지 빌려 썼던 중국의 역법을 버리고, 21년에 걸쳐 독자적인 관측 자료를 모으고 간의·혼천의·소간의 같은 새로운 천문관측 기구를 만들어낸 까닭은, 바로 ‘조선의 주체성’을 세우려는 뜻이었음을 밝혀낸다.

제자들의 열성적인 연구 덕분에 새로운 연구 과제를 찾아내고 함께 배우는 기쁨도 맛봤다는 신 교수는 “이런 경험을 통해 인류 발전의 비밀을 캐는 방법을 터득하길 바란다”고 당부한다.



세종 때 만든 천체관측기구인 소간의. 사진 한겨레출판 제공.
세종 때 만든 천체관측기구인 소간의. 사진 한겨레출판 제공.
그런데 공교롭게도 〈히스토리카…〉의 지은이 역시 서문에서 같은 얘기를 한다. “단순한 사실을 나열하는 것은 백과사전이지 역사가 아니다. 진정한 역사란 발전해 가는 인류에 초점을 둬야 한다.” 인명과 지명, 연대와 사건의 나열에 매몰되기 쉬운 세계사 개론서를 넘어서 역사관의 확장까지 시도하는 셈이다.

그래서 이 책은 편년체의 연대기와는 전혀 다른 통사체 서술을 하고 있다. “기원전 2000년 이후 1000년 동안 인도·유럽계 민족들이 서아시아의 ‘비옥한 초승달’ 지대로 진출한 배경에는 군사 기술의 혁신이 있었다. 말을 타고 싸우는 기병이 등장하고, 철기를 다루는 군대가 전차와 무기에서 주도권을 쥐게 됐다. 금속을 얻고자 장거리 교역이 발달하면서, 선박 기술·화폐·문자의 발달이 함께 이뤄졌다. 유럽 문명의 시원이라 할 크레타 문명은 그 결과로 탄생한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서양 역사서에서 드러나는 지역적 편향성과 편견의 한계를 넘어서지는 못하고 있다. 진나라의 통일제국 수립부터 청나라까지 2천년이 넘는 중국의 역사는 고작 5권에서 1장으로 정리해놓았다. 유럽과 밀접한 아프리카와 아메리카의 고대 문명은 상세히 설명하는 데 비해 ‘서세동점’ 이전의 동남아시아는 거의 빠져 있다.

특히 일본사는 중국에 이어 1장을 할애한 반면 한국사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유럽 문명이 세계를 하나로 만든 기반이 됐다”고 노골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아마도 그 때문에 같은 출판사에서 올 초 〈히스토리카 한국사〉를 따로 펴냈나 보다.

새삼 카이스트 학생들이 밝혀낸 우리 과학사의 비밀 16가지가 값지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런 시도들이 끊임없이 이어진다면, 언젠가는 세계사의 변방에 묻혀 있는 우리 역사를 주역으로 복원해내 서양사가들이 스스로 무지와 오류를 고백하는 상상을 해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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