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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삶의 사막 건넌 시인이 보낸 마음숲 초대장

등록 2008-01-18 20:03수정 2008-01-18 20:07

삶의 사막 건넌 시인이 보낸 마음숲 초대장. 그림 좋은생각 제공.
삶의 사막 건넌 시인이 보낸 마음숲 초대장. 그림 좋은생각 제공.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도종환 지음/좋은생각·1만2000원

‘접시꽃 아내’ 잃은 뒤 해직·병마까지
고달픈 심신 쉬려 들어간 고향산골서
자연에서 깨친 ‘행복 처방 58통’ 배달

여기 한 사람이 있다. ‘접시꽃’ 같은 아내를 사랑했으나 병으로 잃었다. 참교육 외치다 부당한 정권에 치도곤당하고 쫓겨났다. 10년 만에 교단으로 돌아왔으나 병마가 그를 붙들었다. 자율신경 실조증, 신경계가 평형을 잃어 기능을 못하니 현기증, 발한, 설사, 구토 따위를 겪게 된다고 한다. 이름만큼이나 희귀한 질병에 몸은 거덜났다. 낙향. 산방에 육신을 뉘고 보니 나이는 어느덧 쉰 줄에 접어들었다.

뭇 삶의 평균치에 견줘도 평탄하다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시집을 내며 이름을 얻었다 하지만 평판이나 소문만으로 삶이 견디어지랴. 사정이 이러하므로, 그는 불행한가, 우리는 동정과 연민을 준비해야 할까. 하지만 그는 비관을 말하지 않고 고통을 젠체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켜야 할 수많은 계율이 있고 도처에 원수가 숨어 있으며 경쟁과 싸움을 피할 수 없어서 불안하다면 그대는 사막에 있는 것”이라며 겨울바람 맞으며 ‘그곳’으로 오라 말한다. ‘사막을 피하는 법’을 일러주겠다며.

도종환 시인이 충북 보은의 산골에서 ‘편지’ 58통을 보내왔다.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산과 물, 새와 꽃들을 벗으로 두고, 병과 씨름하기보다는 병을 살살 달래며 적은 문장들엔 잘 달인 한약 냄새가 난다. 지난해 말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을 맡은 일은 번잡한 세상사를 감당할 만큼 그가 기운을 차렸음을 알려준다. 때문에 새 산문집은 시인의 ‘투병기’이자 동시대를 사는 이들에게 건네는 ‘삶의 처방전’인 셈이다. 거기엔 밀고 달고 맺고 푸는 판소리 장단처럼 삶의 가락이 어떠해야 고달픈 마음에서 평안을 찾고, 복닥대는 일상에서 행복을 만질 수 있는지가 담겨 있다.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우리는 좀 심심할 필요가 있습니다”라며 운을 뗀 시인은 넌지시 묻는다. “창밖에는 풀풀 눈발이 날리는데 나는 배춧국 한 그릇에 이 저녁이 행복합니다. 다른 이들은 어디서 무얼 먹으며 행복을 찾고 있을까요.” 대답이 쉬 나오지 않는다. 찾고 싶지만 ‘행복의 좌표’는 잘 보이지 않는다. 길 잃은 현대인에게 시인은 손짓한다, 이곳으로 오라고. 어디로? 숲으로. 왜? “그대가 이 숲에 오신다면 숲의 나무들이 일제히 일어서서 나뭇잎을 흔들어 박수를 치며 그대를 받아줄 것입니다. 그대가 이곳에 올 때는 바쁜 걸음으로 산을 넘어오겠지만 돌아갈 때는 느린 걸음으로 천천히 돌아가게 될 것”이므로. 시인이 건네는 것은 ‘삼림욕 티켓’이 아니라 ‘마음숲으로 가는 초대권’이다. 거기서 쪽잠을 자고 우거짓국도 끓여 먹다가 산짐승과 뒹굴고 장작불로 얼굴도 익혀보라는 것이다.


어떻게? 용타 스님을 빌려, ‘~구나’ ‘~겠지’ ‘~감사’로 이어지는 ‘삼단논법’을 생활화할 것을 권한다. 꽃병에 꽂힌 꽃처럼 만원 지하철 타고 출근하다 시계를 잃어버렸다면 아쉽게 마련이다. 분을 삭이고 이렇게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시계를 잃어버렸‘구나’. 시계를 잃고서야 시간의 소중함을 알았으니 잃음이 곧 얻음인 거‘겠지’. 그러니 시계 값이 아깝긴 하지만 ‘감사’….”

한가한 음풍농월이라고 타박하는 이들도 있을 법하다. 신자유주의의 광풍이 휘몰아치는 ‘겨울 공화국’에서 그 무슨 꽃노래 뱃놀이 타령조냐고 눈 흘기는 것이 부당하다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시인의 변론은 이렇다. “우리는 오늘도 잘 익어가고 있을까요. 사람은 자연 속에 있게 해보면 그가 제대로 익은 사람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자연 속에서 드러나는 얼굴빛과 표정 그리고 눈빛과 행동거지를 보면 그가 얼마나 익은 사람인지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그대도 잘 익은 빛깔의 성숙한 과일이기를 바랍니다.” 설령 시인의 처방전이 틀렸다 해도, 투병기가 그만의 사례로 국한된다 해도, ‘자기 긍정의 삼단논법’이 터무니없다 해도 뒤탈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오로지 우리 마음밭에 뿌리는 ‘생각의 씨앗’인 까닭이다. 사막에서 태어나 줄곧 거기서 발 딛고 살면 그곳이 사막인 줄을 어찌 알 수 있을까.

어느 한때든 삶이 사막처럼 팍팍하다고 느꼈다면 시인이 정자체로 적은 처방전을 펼쳐보는 것도 괜찮겠다.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그림 좋은생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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