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과거사 청산’ 펴낸 이용우 박사
인터뷰 / ‘프랑스의 과거사 청산’ 펴낸 이용우 박사
한국 과거사 청산 ‘타산지석’ 프랑스 연구
역사적 배경부터 통계자료 들어 비교분석
“정부 차원의 논의 재활성화 계기 됐으면” “청산해야 할 과거가 너무 많고, 지금까지 이뤄진 청산의 성과가 너무 적다.” ‘너무 많은’ 과거 가운데 일제강점기의 친일파 청산 문제는 가장 핵심에 있다. 이 문제와 항상 함께 거론되는 게 프랑스의 ‘모범적인’ 과거사 청산 사례다. 그 ‘모범성’은 전국적으로, 전방위에 걸쳐 단호하고도 냉혹하게 독일 협력자들을 처단하고 새로운 공화국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데 있다. 하지만 최근 몇년 동안 프랑스의 사례도 성공적이지는 않았다는 견해나 프랑스의 과거청산도 철저하지 않았다는 견해, 우리와 조건이 달라 비교조차 불가능하다는 견해도 제기되고 있다. 이용우 박사(사진)는 그가 쓴 <프랑스의 과거사 청산>(역사비평사·1만3000원)에서 과연 어느 쪽이 역사적 진실에 좀 더 부합하는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며 논의를 시작한다. “우리나라는 워낙 과거사 청산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어서 프랑스의 사례가 일종의 신화가 됐습니다. 그러다보니 한국의 과거사 청산을 반대하는 논리로 ‘프랑스도 철저하지 않았다거나 너무 잔혹했다’는 얘기들도 나오고 있습니다. 프랑스 과거사 청산을 교과서화하는 걸 그만두고, 일단 한국과의 차이를 인정하되, 그 의의는 부정하지 말자는 취지에서 책을 썼습니다.” 그는 우선 책 머리에서부터 한국과 프랑스가 처한 역사적 조건의 차이를 살핀다. 식민지 경험 36년과 점령국 경험 4년, 점령당하지 않은 ‘자유지역’이 있어 독일군에 맞서는 레지스탕스가 운신하기 더 유리했던 점, 일본의 갑작스런 항복으로 ‘도둑맞은’ 한국의 해방 경험과 여러 달에 걸친 전투 끝에 획득한 해방 경험의 차이, 합법적으로 정권을 이양받은 ‘비시 정부’가 단순히 괴뢰 정부가 아닌 자발적 협력 정부였다는 점까지 대독협력자 숙청에 유리한 조건이었다. 하지만 “둘 다 해방 뒤 점령국에 대한 ‘협력’이 주된 청산 대상으로 떠올랐고 협력자들의 처벌과 숙청 문제가 제기되었다”는 결정적인 공통점이 ‘본받을 점’을 남긴다고 강조한다.
<프랑스의 과거사 청산>은 우선 해방 전후 이뤄진 숙청 작업과 다시 1980~90년대에 이뤄진 반인륜범죄 재판을 각종 통계자료를 들어 자세히 소개한다. 해방 전후부터 10년 동안 이어진 숙청 기간 동안 대독협력 혐의자 35만명 가운데 9만8000명이 실형을 선고받았고, 약3만8000명이 수감됐다. 1500명이 정규재판소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처형됐으며, 1만명 안팎은 정식재판 없이 처형됐다. 여성 부역자 2만명이 삭발당하고, 공무원 2만1000명 이상, 군인 1만5000명 이상, 공사 직원 5700명 이상이 숙청당했다. 전국적으로, 사회 전반에 걸쳐 다양한 형태로 진행됐다.
책의 나머지 3분의 1은 숙청에 관한 프랑스인들의 여론과 기억에 초점을 맞췄다. 철저한 숙청을 열망하던 사람들과 용서와 화해를 바랐던 사람들 모두 숙청을 ‘실패’로 규정했다. 이들은 숙청이 미흡했다고 생각하거나, 너무도 가혹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이제는 양쪽 의견 모두 소수에 그치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냥 잊고 싶은 과거”에 가깝다. “프랑스인들은 독일강점기 자체가 암울하고 수치스러워서 괄호 안에 넣어버리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동족을 처벌한 경험이라 트라우마를 남겼고 비시 정부와 숙청을 잊고 싶은 것이죠.”
종전 이후 20년이 지나도록 프랑스 역사가가 쓴 ‘숙청사’가 나오지 않았다. 숙청에 관한 본격적인 전문연구서도 미국의 역사가 피터 노빅이 처음 쓴 것이었으며, 책이 나온 지 17년 뒤에나 프랑스어로 번역됐다. 역사교과서에는 1983년 이후에야 옹색한 지면을 내줬을 뿐이다.
하지만 그는 그건 어디까지나 “이미 역사의 페이지를 제대로 넘긴” 사람들의 문제라고 말한다. “프랑스인들은 숙청을 전반적으로 부정적으로 보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과거사 청산 작업까지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지요. 오히려 대규모의 정의 실현 작업이 있었기 때문에 진통은 겪었지만 오늘날처럼 프랑스가 번성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그는 특히 현 정부가 과거사 관련 위원회를 폐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데 우려를 나타냈다. “이 책이 한국에서 과거사 청산 논의를 재활성화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과거사를 청산하려는 정부 차원의 노력이 계속 이어져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글 김일주 기자 pearl@hani.co.kr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역사적 배경부터 통계자료 들어 비교분석
“정부 차원의 논의 재활성화 계기 됐으면” “청산해야 할 과거가 너무 많고, 지금까지 이뤄진 청산의 성과가 너무 적다.” ‘너무 많은’ 과거 가운데 일제강점기의 친일파 청산 문제는 가장 핵심에 있다. 이 문제와 항상 함께 거론되는 게 프랑스의 ‘모범적인’ 과거사 청산 사례다. 그 ‘모범성’은 전국적으로, 전방위에 걸쳐 단호하고도 냉혹하게 독일 협력자들을 처단하고 새로운 공화국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데 있다. 하지만 최근 몇년 동안 프랑스의 사례도 성공적이지는 않았다는 견해나 프랑스의 과거청산도 철저하지 않았다는 견해, 우리와 조건이 달라 비교조차 불가능하다는 견해도 제기되고 있다. 이용우 박사(사진)는 그가 쓴 <프랑스의 과거사 청산>(역사비평사·1만3000원)에서 과연 어느 쪽이 역사적 진실에 좀 더 부합하는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며 논의를 시작한다. “우리나라는 워낙 과거사 청산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어서 프랑스의 사례가 일종의 신화가 됐습니다. 그러다보니 한국의 과거사 청산을 반대하는 논리로 ‘프랑스도 철저하지 않았다거나 너무 잔혹했다’는 얘기들도 나오고 있습니다. 프랑스 과거사 청산을 교과서화하는 걸 그만두고, 일단 한국과의 차이를 인정하되, 그 의의는 부정하지 말자는 취지에서 책을 썼습니다.” 그는 우선 책 머리에서부터 한국과 프랑스가 처한 역사적 조건의 차이를 살핀다. 식민지 경험 36년과 점령국 경험 4년, 점령당하지 않은 ‘자유지역’이 있어 독일군에 맞서는 레지스탕스가 운신하기 더 유리했던 점, 일본의 갑작스런 항복으로 ‘도둑맞은’ 한국의 해방 경험과 여러 달에 걸친 전투 끝에 획득한 해방 경험의 차이, 합법적으로 정권을 이양받은 ‘비시 정부’가 단순히 괴뢰 정부가 아닌 자발적 협력 정부였다는 점까지 대독협력자 숙청에 유리한 조건이었다. 하지만 “둘 다 해방 뒤 점령국에 대한 ‘협력’이 주된 청산 대상으로 떠올랐고 협력자들의 처벌과 숙청 문제가 제기되었다”는 결정적인 공통점이 ‘본받을 점’을 남긴다고 강조한다.
〈프랑스의 과거 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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