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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아버지의 꿈’ 너머를 꿈꾸는 오바마

등록 2008-03-07 20:35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
이권우의 요즘 읽은 책 /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
버락 오바마 지음/랜덤하우스·1만8900원

정치인의 자서전을 읽을 필요가 있을까 싶어 고민했다. 과장과 미화로 점철될 가능성이 높은데다, 아무리 고상한 뜻을 품고 정치에 입문했다 하더라도 결국 실망감만 안겨줄 터라 그러했다. 거기다 미국의 대선경쟁에 뛰어든 사람의 자서전이니 더욱 망설일 수밖에. 그러다 결국에는 책을 게걸스럽게 읽어나갔다. 계기가 있었다. 힐러리와 벌이는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서로 흠집을 내자 내심 힐러리 대통령, 오바마 부통령 카드가 나오면 좋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 어딘가에 흑인은 안 될 거라는, 결코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무의식이 드러난 것이 아닌가 싶었다. 마음속의 잡초를 뽑아버리려 책을 든 셈이다.

개정판 서문을 보니, 경선을 염두에 두고 쓴 자서전은 아니어서 마음이 놓였다. 오바마가 하버드 로스쿨 다닐 적에 〈하버드 로 리뷰〉 편집장으로 뽑히자, 출판사가 자서전 출간을 제의했고, 그때 쓴 것을 거의 손대지 않고 냈다 한다. 지나치게 유려하거나 화려하지 않고 혼란스러운 감정이 적절하게 드러나 있는 것으로 보아, 대필작가가 쓴 것 같지는 않았다. 이 점은 분명 힐러리의 자서전 〈살아 있는 역사〉와 여러 모로 대비된다.

자서전 제목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을 주목한다면, 오바마의 트라우마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다. 오바마의 아버지는 케냐 출신이었다. 하와이대학에서 유학 생활 할 적에 백인 여성과 결혼해 오바마를 낳았다. 케냐에는 부인과 자식이 있었다. 오바마가 아버지 부재 속에 살아야만 했던 것은 가치관의 충돌 때문이었다. 하버드 장학금에 눈이 먼 아버지가 모자를 하와이에 남겨놓고 공부하러 떠난데다, 독특한 이력의 오바마 친할아버지가 백인 여성과 결혼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결국 아버지는 가족을 버리고 케냐로 금의환향한다.

오바마에게 아버지는 소문과 풍문 속의 사내였다. 아버지만큼만 하면 된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다. 훗날 잠깐 하와이에 들른 아버지와 지내고 나서는, 더욱 그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따지고 보면 개인적 출세와 영달을 위해 노력했을 뿐이다. 아버지의 꿈은, 흑인도 사회적으로 성공해야 한다는 강한 열망을 뜻하지만, 그 아버지가 꾸지 않은 꿈, 그러니까 흑인 공동체에 대한 애정과 헌신을 꿈꾸어야 한다는 뜻이 숨어 있기도 하다. 무릇 모든 아들은 아비를 닮으면서도 그를 넘어서고자 하는 법이다.



이권우의 요즘 읽은 책
이권우의 요즘 읽은 책
이 책의 눈은 3부 ‘케냐, 화해의 땅’이다. 과장하자면 앨릭스 헤일리의 〈뿌리〉를 연상시키는 내용이 나온다. 케냐를 방문했던 시절을 회상하면서 오바마는 자신이 평생 풀어야 할 화두가 무엇인지 풀어놓는다. “우리의 공동체는 무엇이며, 그 공동체는 우리의 자유와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 우리가 져야 하는 의무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어떻게 하면 권력을 정의로, 분노를 사랑으로 바꿀 수 있을까.”

오바마가 시카고의 흑인운동을 접고 하버드 로스쿨에 들어가고, 이제 정치의 최전선에 선 것은 스스로 던진 질문의 답을 찾아내기 위해서일 듯싶다. 과연 그는 이 일을 해낼 수 있을까.

이권우 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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