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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음 패턴과 뇌의 교감이 감흥 ‘지휘’

등록 2008-03-21 19:31

〈프루스트는 신경과학자였다〉
〈프루스트는 신경과학자였다〉
정재승의 책으로 만난 과학 /

〈프루스트는 신경과학자였다〉
조나 레러 지음/지호·1만8000원

얼마 전 평양을 방문해 화제가 되었던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로린 마젤은 이번 겨울 시즌을 마지막으로 뉴욕 필을 떠난다. 지난겨울 연구를 위해 뉴욕에 머물렀을 때 시간을 내어 링컨센터에서 열린 그들의 공연을 보러갔다.

그러나 하필 내가 선택한 날의 레퍼토리는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이탈리아 전위음악 작곡가 루치아노 베리오의 교향곡이었다. 전자음악을 중심으로 아방가르드적인 작곡으로 유명한 그의 ‘신포니아’는 끔찍한 편두통 같은 불협화음과 간질 발작적인 리듬의 연속이었다. 게다가 연주 시간도 1시간이 넘는 것이 아닌가!

모처럼 나들이한 노부부들은 대개 잠들었으며, 가수들이 오케스트라 사이에 끼어 입으로 연주를 하는 대목에선 벌떡 일어나 나가는 중년 남자도 10명은 되었다. ‘음악의 역사는 청중의 기대에 감히 도전했던 예술가들의 고군분투’라는 말을 그날 밤 우리 모두는 고통스럽게 배워야만 했다.

현대음악은 왜 점점 대중들로부터 벗어나 불협화음이라는 기괴한 음역을 개척하고 우리에게 듣도록 강요하는 것일까? 그들에겐 진정 그 곡들이 아름답다고 느껴지기라도 하는 걸까? 얼마 전부터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학생들과 함께 ‘신경미학’이라는 분야를 새롭게 연구하면서 내게 제일 먼저 찾아온 질문도 바로 그것이었다.


현대음악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이 질문은 고루한 질문이겠지만, 뇌를 연구하는 사람들에겐 이 문제가 늘 신선한 질문이다. 현대음악가들은 음악이란 ‘우리가 듣는 법을 배운 소리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작곡가들은 발견되지 않은 음의 패턴을 만들어내고 우리는 그것에 익숙해지고 학습함으로써 새로운 청각적 아름다움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신경과학자들이 왜 이 질문을 각별하게 생각하는지는 조나 레러가 쓴 첫 작품이자 미국에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던 〈프루스트는 신경과학자였다〉에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예로 들면서 불협화음을 탐색하는 현대음악가들의 노력이 신경과학적으로 어떻게 이해될 수 있는지 설명한다. 그들에 따르면, 우리의 뇌는 음악을 듣는 동안 끊임없이 패턴을 익히고 곧이어 올 패턴을 예측한다. 그러나 우리가 기대했던 패턴이 나타나지 않으면 정서적 긴장감은 고조되지만 그 패턴이 고스란히 돌아왔을 때 정서적 감흥은 크게 증폭된다. 대부분의 교향곡에서 화려한 음들의 오랜 여정을 거쳐 다시 으뜸음으로 돌아왔을 때 우리가 안정을 되찾고 감동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플라톤은 음악이 자연의 소리를 재현하는 것이며 음악적 질서는 수학적 질서를 반영한다고 믿었지만, 신경과학자들은 음악을 ‘뇌가 듣는 법을 터득한 공기의 진동’이라고 주장한다. 뇌가 선택적으로 집중한 음들의 패턴을 기억하고 예측하면서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것, 그것이 음악이 우리에게 주는 즐거움이라는 것이 지은이가 자신의 매력적인 책에 담은 주장이다.

정재승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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