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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성장 소설’이 팔리지 않는 시대

등록 2008-03-28 22:19

한기호의 출판전망대
한기호의 출판전망대
한기호의 출판전망대 /

꼭 5년 전에 5년 동안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 가운데 분야별로 꾸준히 팔린 책이 무엇인지 알아본 적이 있다. 인문서 분야는 역사ㆍ고전ㆍ신화 등을 독특한 시각으로 새롭게 해석한 책들이 큰 흐름을 이루고 있었다. 인류의 지적 유산을 재구성하는 이런 흐름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소설은 1위부터 10위까지 성장소설 일색이었다. 성장소설은 한 인간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꿈과 희망, 부분적인 성취와 좌절을 통해 개인의 보편적 교양, 곧 자기실현을 위한 길을 제시하는 소설이다.

하지만 요즘은 아이들이 성장통을 앓을 기회를 원천봉쇄당해서인지 성장소설이 예전처럼 팔리지 않는다. 물론 ‘보릿고개 시절’을 다룬 `대한늬우스' 식 성장소설이나 외국의 성장소설이 아이들의 관심을 크게 끌지 못했을 수도 있다. 또 중ㆍ고등학교가 오로지 대학을 가기 위한 정거장으로 전락한 것도 하나의 이유일 것이다. 최근 일제고사가 부활하는 바람에 중학생도 ‘0교시’와 ‘야자’ 같은 보충수업에 내몰렸고, 그런 압박감은 유치원까지 내려가고 있다. 그러다 보니 그나마 아이들이 찾는 책은 상위 5%가 읽는 수험서나 판타지, 애정소설, 관계의 쓸쓸함을 다룬 일본소설, 자기계발서 일색이다. 이런 책들은 결코 아이들의 실존적 고민을 근원적으로 해소해주지 못한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주위의 도움을 받기도 쉽지 않다. 신나게 뛰어놀 공간도 없을 뿐 아니라 핵가족화, 맞벌이 등으로 대화할 상대조차 없다. 그들에겐 그들만의 고민을 담은 성장소설을 안겨주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키워주어야 하지 않을까?

<포스트잇 라이프>(엘리스 카이퍼즈 지음, 신현림 옮김, 까멜레옹)는 산부인과 의사인 싱글맘과 열다섯 살 딸이 포스트잇에다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어 냉장고 문에 붙이며 주고받은 대화를 그대로 책에 옮겨놓은 것이다. 산부인과 의사인 엄마는 유방암에 걸려 죽음을 앞두고 있어 딸에 대한 마음이 남다르다. 그러나 아이의 관심은 오로지 남자친구에게만 가 있다. 아이는 엄마가 세상을 떠난 다음에야 엄마와 함께한 시간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깨닫는다. 독특한 발상의 이 소설은 포스트잇을 읽듯이 글을 빠르게 읽어갈 수 있기에 책과 ‘담 쌓은’ 아이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완득이>(김려령 지음, 창비)는 우리도 이만한 성장소설을 가지게 되었구나, 하는 감탄을 하게 만든다. 양극화로 말미암아 우리 사회의 도시빈민 문제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다문화 가정이나 잦은 가족해체에 따른 편부모 가정도 크게 증가하고 있다. 게다가 주인공 아빠는 키가 작은 장애인이다. 어려운 조건은 모두 ‘갖춘’ 환경에서 자라고 있음에도 열일곱 살 주인공 완득이는 활기찬 이웃의 도움과 ‘똥주’라는 별명을 가진 교사의 세심한 배려로 너무나 하고 싶었던 킥복싱을 배우며 당당하게 ‘자아’와 ‘세계’의 가치를 깨달아간다. 완득이의 공부 잘하는 친구들까지 공부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깨달아가고 있다. 한번 잡으면 끝을 볼 때까지 손에서 놓기 힘든 흡인력도 이 소설이 지닌 특장이다.

아이를 둔 사람이라면 새 정부 등장 이후 하루가 다르게 악화되는 학교 현실을 보며 느끼는 답답함이 적지 않을 것이다. 두 소설 모두 그런 답답함을 단숨에 날려줄 것이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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