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봉의 문학풍경
최재봉의 문학풍경 /
임화를 다시 읽는다. 정치는 길을 잃고 문학은 다만 무력하기만 할 때, 요망하도록 어지러운 현실을 미학이 깔끔하게 정리하지 못하고 방치할 때, 임화의 묵은 글들에서 지침을 얻는다. 지금으로부터 꼭 100년 전에 태어나 불꽃같은 생애를 살다가 사십대 중반에 허리가 꺾인 사내. ‘조선의 발렌티노’에서 ‘미제의 스파이’까지 가파른 운명의 널뛰기 속에서 시종 문학과 비평의 줏대를 세우고자 애썼던 그 사람, 임화.
국문학자 겸 문학평론가 권성우 교수(숙명여대)의 연구서 <횡단과 경계>(소명출판)의 전반부에는 임화를 다룬 논문이 넷 실려 있는데, 거기 인용된 임화의 문장들은 흡사 21세기 벽두 지금의 한국 문학과 문단을 겨냥한 듯해 서늘한 독후감을 남긴다.
“문학은 행동의 광장에서 예술로 돌아온 것이 아니라 실상은 문단으로 돌아왔음에 불과하였다. 이리하여 신문학사상 드물게 보는 너무나 문학적인 문단의 시대, 실상인즉 문단적인 문학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문학이 문단적으로 되면서 불어 내어던진 것은 이른바 이데올로기뿐 아니라 생활도 내어던졌고, 중요한 것은 문학에서도 떠나오기 시작한 것이다.”(‘문단적인 문학의 시대’)
“그러나 평단의 최근 추세를 본다면 평론이나 비평이 작품과 작가를 알게 된 대신, 작품과 작가 이외의 아무것도 몰라가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작품과 작가에 관한 지식만으로 비평은 과연 건전히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을까? 비평의 고도(高度)란 것은 본디 작품과 현실 양자의 위에 있는 것으로, 현대 비평은 결국 양각(兩脚)에서 일각을 버리고 외다리로 걷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현대 비평과 평론의 성격을 논함에 무엇보다도 사회적, 정치적 내지는 사상적 고도의 상실을 지적하지 아니할 수가 없다.”(‘비평의 고도’)
문학이 문단이라는 좁은 틀에 갇혀 버림으로써 이념과 생활은 물론 본디 의미의 문학 자체로부터도 멀어지게 된 사태란 지금의 한국 문학에 대해서도 말해 주는 바가 적지 않아 보인다.
?작품과 작가에 매몰되어 그 바깥의 현실을 몰각하고 사회성 및 정치성, 나아가 사상의 차원에 미달하는 평론의 실상에 대한 지적 또한 아프게 들린다. 임화는 다른 글들에서도 “비평이 작품을 분석하는 일련의 기술로 떨어지는 것이 비평의 시대라고 불러 본 현대의 특징”(‘비평의 시대’)이라거나 “조선 신문화의 전설이었던 계몽적 혹은 이상적 성격이 전부 시장 확대의 결과라고는 할 수 없어도 좌우간 점차로 희박해지고 있는 것이 사실”(‘문화기업론’)이라는 식으로 권력과 자본의 그늘 아래 얌전하게 순치되어 버린 문학과 비평의 왜소화를 개탄하고 있다.
“임화의 비평과 산문에는 지금 이 시대 중요한 비평적 쟁점의 대부분이 담겨 있다. 가령, 역사성과 정론성을 상실한 당대 문단에 대한 예리한 성찰, 작품에 지나치게 수동적으로 밀착한 해설 비평에 대한 비판, 공론성을 상실한 제도화된 비평의 문제, 미디어에 종속된 문학과 비평의 위상, 문화적 획일주의에 대한 저항, 논쟁이 사라진 시대에 대한 문제제기 등등…”
권성우 교수가 밝힌, 임화를 다시 읽어야 하는 까닭들이다.
관련기사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