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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문단은 지금 ‘춘래불사춘’

등록 2008-02-22 20:28수정 2008-02-22 20:30

최재봉의 문학풍경
최재봉의 문학풍경
최재봉의 문학풍경 /

겨우내 단단히 얼어붙었던 공원 연못은 팥빙수 그릇 속의 얼음처럼 녹아서 흐물거린다. 운동기구에 매달린 사람들, 비둘기를 쫓아 이리저리 뛰는 아이들의 움직임은 경쾌하고 역동적이다. 새 울음도 한결 활기차고, 바람은 어느덧 훈기를 머금었다. 아직은 꽃도 새잎도 보이지 않지만 땅거죽은 꿈틀꿈틀 나뭇가지는 움찔움찔, 생명의 소생을 예비하는 움직임이 미세하면서도 확고하다.

연말의 왁자한 문학상 시상식과 송년회 이후 잠잠하던 문단도 기지개를 켜는 모습이다. 문예지 봄호들이 차례로 배달되고, 한동안 뜸했던 출판기념회와 기자간담회도 줄을 잇는다. 22일 저녁에 열린 재일 조선인 〈종소리〉 시인회 대표시선집 〈치마저고리〉(화남)의 출판기념회 역시 새봄처럼 화사하고 반가운 자리가 될 참이었다. ‘그 일’만 아니었다면.

‘그 일’이란 주인공인 네 사람의 재일동포 시인들이 참석하지 못한 사태를 가리킨다. 본래는 필자 여덟 명 가운데 정화수(재일본조선인문학예술가동맹 중앙고문)씨 등 네 사람이 출판기념회에 참석해서 국내 문인들과 출간의 기쁨을 나누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귀국 예정일이었던 21일 오전 일본 주재 한국 대사관 쪽에서 정화수씨에게 경고성 연락을 취해 왔다. 요지는 이번에 귀국하면 국가정보원의 조사에 응해야 하리라는 것이었다. 지난 70, 80년대에 일본을 방문한 남쪽 인사들을 만나 민주화 및 통일운동에 관해 논의한 일을 문제삼는 것이었다.

총련계 인사인 정씨는 2004년의 동포 고향방문단 일원으로 고향인 부산을 방문했고 2006년에는 6·15 기념 행사에 참가하느라 광주를 방문했지만 한번도 ‘조사’를 받은 적이 없었다.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조사 운운하는 것은 무슨 연유냐며 전화기 너머에서 정씨는 울분을 감추지 못했다. 결국 정씨는 귀국을 포기했고 다른 세 사람도 행동을 같이하기로 했다. 〈종소리〉는 60대에서 80대에 이르는 재일동포 1세대 문인들이 2000년부터 철 따라 내고 있는 일본 유일의 한국어 시동인지다.

남북 문인들이 함께 내는 잡지 〈통일문학〉 창간호를 남쪽 에 들여오는 것을 불허하겠다는 통일부의 태도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6·15 민족문학인 남측협회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소설가 정도상씨는 “정권 교체 국면에서 대북관계에 관한 발언권이 통일부에서 국가정보원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증거”로 상황을 이해했다. 앞으로의 대북 교류와 협력사업 역시 크고 작은 차질을 각오해야 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봄 오는 동네 구례와 하동에 사는 이원규·박남준 시인은 매화와 산수유꽃을 보러 내려오는 서울 사람들 맞이에 바삐 돌아치곤 한다. 그러나 이들은 지금 따뜻한 집을 나와 아직 바람끝이 시린 남한강변 길을 걷고 있다. 경부운하 건설에 반대하는 종교인들과 동행해서 밤이면 시린 바닥에 등을 대고 새우잠을 자며 봄 속의 겨울 추위를 절감하고 있다. 두 시인이 포함된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 순례단은 다음주에는 신경림 시인의 절창 〈목계장터〉의 무대를 지날 예정이다. 서사시 〈남한강〉을 쓰기도 한 신 시인은 운하로 망가질 자연과 환경, 그리고 ‘영어 몰입 사회’에서 홀대받고 잊혀져 갈 모국어의 앞날에 대해 혀를 끌끌 차며 안타까워했다.


춘래불사춘. 바야흐로 봄은 왔으되 봄 같지 않은 이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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